다음 달 초 선임될 차기 금융결제원(이하 결제원) 원장에 김학수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이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공심위)를 앞두고 이달 초 금융위를 떠났다. 김 전 상임위원의 임명이 확정될 경우 결제원이 1986년 6월 설립된 이래 처음으로 한국은행 출신이 아닌 인사가 원장을 맡게 된다. 현 이흥모 원장을 비롯해 역대 원장 13명 모두 한은 출신 인사였으며, 그동안 한은 부총재보 출신이 원장을 맡아왔었다.
33년 만에 한은 출신이 아닌 인사가 원장을 맡게 된 데에는 표면상 결제원 노동조합(노조)을 비롯해 한은 노조, 전국금융산업노조, 사무금융노조가 후임 결제원장으로 유력시됐던 한은 부총재보 A 씨를 총력 저지했기 때문이다. 이들 노조는 1월 말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은 정문 앞 1인 시위, 청와대 앞 기자회견 등 투쟁 강도를 높였었다.
이후 한은은 전·현직 임원 등 한은 관련 인사를 결제원장 후보자로 접수시키지 않는 초강수(?)를 뒀다. A 씨를 반대했던 결제원과 한은 노조도 이 같은 조치에 오히려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이들 노조들도 A 씨를 반대했을 뿐 한은 출신 인사를 반대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공직자 이직이 최근 강화되면서 어차피 한은 출신 인사가 가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실체에 좀 더 가깝지 않았나 싶다. 한은 관계자에 따르면 연말연초 간부회의 당시 이 같은 내용이 이주열 한은 총재에게 보고됐다.
이런 와중에 최근 한은 안팎에서는 이 총재가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자리를 스와프(swap·맞교환)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즉, 금융위에 한은 몫인 결제원장 자리를 주고, 추후 한은에 금융위 몫인 제3의 자리를 줄 것이라는 소문이다.
이 총재와 최 위원장이 같은 강원도 출신이라는 점도 이 같은 소문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둘은 강원도 출신이 서울로 대학에 진학할 경우 강원도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인 강원학사에 선후배 사이로 같이 생활하기도 했던 막역지우(莫逆之友)다.
한편 결제원장 후보자 접수가 끝나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달 25일 금융위는 ‘핀테크 및 금융플랫폼 활성화를 위한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금융위가 주축이 돼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이 자료에는 기획재정부와 중소벤처기업부, 한은, 결제원도 이름을 올렸다.
핀테크 중심의 금융혁신에 대비해 결제와 송금에 필수적인 금융결제망을 폐쇄형에서 개방형으로 전환하는 등 결제시스템을 재편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연내 전자금융업법 개정과 오픈뱅킹을 전면 시행하고, 중장기적으로 한은 규정까지 개정하겠다는 추진 일정까지 내놨다.
지급결제업무에 대한 주도권을 금융위가 갖겠다는 의도도 숨기지 않았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결제 제도나 정책은 당연히 금융위의 업무”라면서도 “거액결제망인 한은 금융결제망(BOK-WIRE)과 소액결제망인 결제원 지급결제시스템은 인프라 그 자체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와 관련해 한은에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복수의 한은 관계자들은 “금융위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추가 논의가 필요한 부문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법안 등은 누구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은 일각에서는 금융위의 이 같은 행태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다른 복수의 한은 관계자들은 “한은 존재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통화정책도 금융안정도 아닌 지급결제 업무”라며 “총재가 과연 이 업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은이 어떤 식으로라도 반박했어야 옳았다”고 강조했다.
한은 본연의 임무는 위기 시 발권력을 동원해 금융시장에 최종적으로 자금을 공급해 주는 소위 최종 대부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제원장 자리를 금융위에 내주는 시점에 금융위가 핀테크를 이유로 지급결제업무를 총괄하려는 시도는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이 총재가 자리 스와프를 위해 한은 본연의 임무인 지급결제업무를 등한시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런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