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업계가 달라진 외부감사법(외감법)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까다로운 국제회계 기준에 맞추기 위해 감사 비용이 급증하고 회사와 회계사의 책임이 강화되는 등 매년 떠안아야 할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선 외감법으로 시장 위축이 예상된다는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그동안 지속적으로 거론된 회계 투명성 문제를 해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1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개정·시행한 외감법은 대표이사는 내부회계 관리제도를 자체 점검한 운영실태보고서를 작성해 이사회·감사 등에 보고하고, 감사는 내부회계 관리제도의 평가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또 감사인의 책임을 강화해 과징금은 감사보수의 최대 5배를 부과하고, 분식회계를 묵인할 경우 최고 10년 이하의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매출규모와 업종에 따라 매년 받아야 할 외부감사 시간을 정하는 표준감사시간제도 도입으로 감사시간도 늘어나 기업의 부담도 커졌다.
한 회계사는 “과거에는 틀린 부분이 있으면 감사인이 기업에 문제를 지적하고 해답을 줄 수 있었지만 바뀐 외감법은 의견표명만 가능하다”며 “결국 기업 재무재표 작성에 감사인이 관여하지 말라는 뜻으로 회계적인 문제에 회사가 제대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한정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외감법에 따른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은 기업이 30곳을 넘기기도 했다. 특히 제약바이오기업 중 알보젠코리아, 케어젠, 캔서롭, 경남제약 등 4개사가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바 있다. 내츄럴엔도텍과 솔고바이오도 4사업연도 연속 영업손실 발생으로, 폴루스바이오팜은 감사의견 한정사유로 관리종목에 지정되기도 했다.
이 같은 외감법에 업계에선 당분간 회계비용은 증가하고 투자 움직임은 둔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회계기준이 기존과 달리 해석되는 부분이 많아 종속회사 평가에 문제가 있다면 감사법인에서 다른 회계법인의 평가를 받아오도록 하는 추세"라며 “감사를 받기 전 회계 컨설팅 업체 2곳을 선정해 자문을 구하는 등 기존 감사보수가 5000만원이었다면 이제는 2배가 넘는 1억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 매년 회계상 문제 발생을 막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은 국제회계 기준에 맞춰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전문가가 많지 않은 편”이라며 규모가 작은 바이오업체들은 어려움이 가중되고 미래수익가치 판단의 어려움으로 감사의견을 적정하게 받을 수 없다는 판단에 기업 확장이나 투자에 소극적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동안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논란이 되어왔던 제약바이오업계의 회계문제들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긍정적인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회계사는 “당장 이익을 내지 못하는 바이오기업들을 고려하면 과도한 잣대로 보여질 수 있지만 지금의 과도기를 지나 2년 정도 후면 정착이 가능할 것”이라며 “다만, 외감법에 따른 국가적 차원의 제약바이오 업계 회계처리 인력양성에 대한 지원은 꼭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23일 달라진 외감법에 따른 제약업계 대응전략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