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글로벌 금융위기 파고도 뛰어넘은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가 장기간의 실적 침체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대수술에 들어간다. 2차 대전 이후 독일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자 ‘유럽 최강’이라 불려온 도이체방크의 몰락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도이체방크 감독위원회는 이날 회의를 열고 강력한 구조조정안을 통과시켰다. 구조조정안은 대규모 인력 감축과 핵심 자산의 처분이 포함됐다.
통신에 따르면 도이체방크는 2022년까지 총 7만4000여명의 글로벌 인력 중 약 20%에 해당하는 1만8000명을 감원해 향후 몇 년간 약 190억 달러(약 22조3155억 원)의 비용을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 투자은행 부문의 830억 달러 규모 자산을 분리해 축소한다는 계획이다. 도이체방크는 이러한 구조조정 비용으로 2022년까지 83억 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크리스티안 세빙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는 구조조정 계획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도이체방크는 오늘부터 중대한 변화를 시작한다”며 “고객 거래를 중심으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 은행 부문을 신설해 기업의 자금 결제 등 수요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축소된 투자은행 부문은 기업에 대한 자문 업무 및 외환으로 중심을 옮긴다”고 설명했다.
도이체방크가 이처럼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데는 최근 들어 악화한 실적 탓이 크다. 도이체방크가 오는 25일 발표할 2019 회계연도 2분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31억 달러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도이체방크의 침체는 이보다 훨씬 전인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도이체방크는 ‘기적’이라고 불린 2차 대전 후 서독의 경제 성장을 금융면에서 지원했다. 독일 기업들과의 거래를 중심으로 ‘유럽 최강’이라 불린 도이체방크가 투자은행 부문에 치우치기 시작한 건 1998년 미국 뱅커스트러스트 인수가 계기였다. 독일 사업이 한계점에 이른 가운데 해외에 진출하는 독일 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직접 해외로 진출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도이체방크는 세계 최고 은행을 목표로 투자은행 부문을 급격히 확대하면서 무리수를 뒀다. 한때 골드만삭스 같은 미국 월가의 대형 은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했지만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악화한 투자은행 부문의 수익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여기다 각종 스캔들에 시달리면서 거액의 합의금을 지불하는 등 악재가 이어진 것도 치명타였다. 2017년 1월엔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온 부실 모기지담보부증권(MBS) 판매 관련, 미국 법무부와 72억 달러에 사건을 종결하기로 합의했다. 또 러시아 돈세탁 관련해 6억3000만 달러 규모의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거래 은행으로서 지난 3월에는 미 하원 정보위원회와 금융서비스위원회로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금융 기록을 제출하라는 요구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연방 법원은 도이체방크가 미 하원에 해당 자료를 제출하라고 판결했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4월 업계 2위 코메르츠방크와 인수 합병을 논의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합병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리스크에 대한 부담으로 협의를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