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스벤 브링크만의 ‘철학이 필요한 순간’

입력 2019-07-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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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적 삶은 허무주의로 흐른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최대한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데는 철학이 필요하다. 이때 철학은 현학적인 철학이 아니라 일상의 삶과 연결고리를 가질 수 있는 철학이다. 덴마크 철학자 스벤 브링크만의 ‘철학이 필요한 순간’은 생활인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철학서다.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앞서 살았던 철학자들이 삶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을 10가지로 묶어 ‘삶에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으로 정리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온통 도구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를 살아간다. 이익이 되거나 남는 것의 유무가 좋은 활동과 그렇지 않은 활동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실용성이 떨어지는 활동에 시간을 쏟는 사람은 덜떨어진 사람으로 간주되기 일쑤다. 과연 올바른 일인가. 물론 실용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모든 일을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나 수단으로 생각해 버리는 도구주의적 사고방식은 그 폐해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삶의 귀한 순간들을 그냥 흘려 보내 버리도록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허무주의의 덫에 빠져들도록 만든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도구화 현상은 사실상 허무주의적입니다. 아무것도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따금 실용적인 학문으로 평생을 달려온 사람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전부를 걸었던 분들에게 허무주의적 기운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도구화가 가져온 폐해일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외치는 것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도구화를 극복하는 일과 허무주의에 저항하는 일이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도구화를 극복하는 과정은 일상이나 현실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생철학이 되어줄 10가지 원칙은 무엇일까. 현대인들의 고민이 현대인만의 것이 아니었음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10가지 생각의 토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리가 그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 선이다(아리스토텔레스). 존엄성은 가격으로 따질 수도 없고 대체될 수 없다(칸트). 인간은 약속하는 동물이다(니체). 자기란 관계 그 자체와 관계하는 관계다(키에르케고르). 진리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진실할 수 있다(아렌트).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은 그의 삶 무언가를 손에 쥐는 일이다(로이스트루프). 사랑은 우리 자신 외엔 다른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다(머독).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이다(데리다). 자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카뮈).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몽테뉴).

이 책은 10개 장에서 철학자들의 생각과 철학을 소개한 다음 이들이 의미 있는 삶에 대해 현대인들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를 간략하게 정리해 제시한다. 역사상 걸출한 반도구주의 사상가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들 수 있다. 그는 이 분야에서 선구자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행복과 건강 같은 이득을 재는 저울로만 측정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역설하였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귀한 일은 귀한 일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타인을 돕거나 친절하다면 그 행위는 유용성을 떠나 그 자체로 의미와 존엄성이 있는 행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한 행동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행복의 핵심 요소라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윤리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진리에 대한 관조 역시 그 자체로 목적인 활동으로 꼽았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기에 그런 고유 능력을 잘 발휘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여름에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의 길잡이를 할 수 있는 대중적인 철학서다. 공병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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