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본부장은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방미 성과를 설명했다. 그는 23~27일 닷새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 D.C를 찾았다.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미국과 공조를 이루기 위해서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가 동아시아 역내 안보와 글로벌 가치사슬에 미치는 악영향을 부각한다는 게 한국 측 핵심 전략이었다. 이와 함께 수출 통제 제도 미비 등 일본이 수출 규제를 강행하며 내세운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내는 데도 노력했다.
유 본부장은 25일 미국 수출 정책 책임자인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만나서도 이 같은 점을 부각했다. 그는 로스 장관에게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미국 산업 및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일본 측 조치가 조속히 철회될 수 있도록 미국 입장에서 필요한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로스 장관은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노력의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엘리엇 엥겔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 마이클 맥컬 외교위 간사 등 의회 인사들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의원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한미일 안보 공조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한국의 설명에는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역할에 관해선 언급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유 본부장은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미국을 찾았던 2주 전과 워싱턴의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한일 통상 갈등을 단순히 양국 문제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미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유 본부장의 방미에서 가시적인 성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미국 산업계의 호응이다. 반도체산업협회, 전미제조업협회 등 미국 산업계 6개 단체는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서한을 24일 유 본부장과 세코 히로시케 일본 경제산업상에게 보냈다.
서한에서 이들 단체는 "일방적인 수출통제정책의 변화는 글로벌 공급망에 혼란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업계 전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조속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유 본부장은 서한에 관해 "그간 우리 정부에서 지적하고 우려한 바를 업계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생하게 확인해줬다"고 평가했다.
산업부는 이번 서한에 반도체나 IT산업과는 직접적인 관계없는 전통적인 제조업 기업이 참여한 것에 특히 고무됐다. 유 본부장은 한 미국 제조업 기업 관계자가 "이젠 반도체가 안 들어가는 물건이 없다"며 "반도체에 영향을 주는 조치는 미국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산업부와 유 본부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를 막기 위한 아웃 리치(대외접촉) 활동을 지속하기로 했다.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장관회의에서도 한일 간 외교전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유 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협상국들에 일본 수출 규제의 부당성을 알린다는 계획이다. 산업부는 RCEP 회의에서 유 본부장과 세코 경제산업상과의 양자 회담을 추진했지만, 일본 측이 일정을 이유로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