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10일 기자들과 만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합병에 대해 정부에 건의할 예정”이라고 돌발 발언했다. 양 기관으로 나뉜 예산과 인력을 합쳐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책금융기관 구조조정에 대한 불씨가 다시 지펴질지 주목된다.
이 회장은 이날 여의도 본점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정책금융이 분산화돼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은 정책금융도 구조조정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회장은 “(정책기관이) 7개 부처에 몇 십 개 기관으로 나눠져있어 굉장히 비효율적”이라며 “모든 걸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불합리하지만, 일부는 서로 경쟁하고 일부는 합쳐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구조조정보다는 산은과 수은의 ‘부분적 통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그러면서 그는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 “산은과 수은의 역할에는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며 “두 기관을 합치면 인력이 줄어들고, 예산도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IT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남는 영업점 인력을 필요한 곳에 집어넣는 식으로 전체적인 규모를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런 통합론은 이 회장의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통합론은) 산은 회장 입장에서 2년간 정책금융 해온 경험 토대로 이슈를 던진 것”이라 “정부와 전혀 협의된 것은 없고 제 사견”이라고 일축했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의 깜짝 발언에 당황하는 분위기다. 한 수은 관계자는 “굉장히 당황스럽다”며 “특히 지금 수출입은행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저 발언의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발언은) 이 회장의 개인 발언이라고 했지만, 공식적인 자리인 만큼 이미 어느 정도 정부와 얘기가 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정책금융 기관의 통합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논의가 이어져왔다. 지난해 5월에는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정책금융기관, 통합형 체제로의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보고서에서 정책금융기관의 지주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책금융을 총괄하는 지주를 만들고 중복되는 비용을 줄여 정책금융 집행을 효율화하자는 주장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정책금융 구조조정은 낡은 이슈”라면서 “이번 이 회장의 발언으로 다시 불씨가 지펴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이 회장은 지방 이전 이슈에도 강한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그는 “일부 지역 정치인을 중심으로 산은의 지방이전이 추진되고 있지만 지방이전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산은이 해외로 팽창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할 이 시점에 지방이전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