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수석부회장 시대가 본격화한 가운데 현대차그룹의 투자 방식에도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가동률이 떨어진 해외 공장을 과감하게 폐쇄하되, 친환경과 자율주행 등 미래차 기술 경쟁력 확보에는 사상 최대투자를 단행하며 기술 선점을 노리고 있다.
25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차그룹의 투자 방식이 대대적인 변화를 맞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지시간으로 전날 현대차그룹은 미국 뉴욕에서 자율주행업체 ‘앱티브 테크놀로지스’와 자율주행 솔루션 개발 및 판매를 위한 합작법인 설립에 합의했다. 지분 50%에 대한 댓가로 약 2조4000억 원을 투자하게 됐다.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글로벌 3대 자율주행 기업과 제휴는 현대차그룹에게 적잖은 수혜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지적 재산권에 대한 대대적 투자에 대해 시장이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실제로 자율주행 합작법인에 투자한 2조4000억 원은 당장 현대차 아산공장 규모(연 30만 대)의 해외공장 2개를 거뜬히 건설할 수 있는 금액이다.
나아가 스웨덴 볼보 매각대금의 1.5배, 쌍용차 매각대금의 5배 수준이다. 최근 업계에 매물로 나온 아시아나항공을 충분히 인수하고도 약 5000억 원을 챙길 수 있을 만큼 대대적인 투자다.
그러나 정 수석부회장은 생산설비 확대와 계열사 확장 등 외연적인 성장 대신, 친환경과 자율주행 등 미래차 경쟁력 확보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해 수석부회장에 취임한 이후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 확보를 위해 국내외 기술진들과 손잡고 관련기술 선점에 속도를 내왔다.
스스로 공언했던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다. 시장 판도를 주도하는 ‘게임 체인저’가 되기 위한 정 수석부회장의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된다.
이같은 전략적 투자는 일찌감치 2017년 시작했다. 그해 연말 이스라엘 자율주행 개발업체 옵시스 투자를 시작으로 지난해 △1월 미국 자율주행기업 오로라 △5월 미국 레이더 기술기업 메타웨이브 △10월 인공지능 퍼셉티브 오토마타 등 글로벌 모빌리티 기업에 속속 투자를 단행해 왔다.
이처럼 미래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반복하는 반면. 효율성이 떨어진 해외 공장은 거침없이 문을 닫고 있다.
가동률이 하락한 공장을 유지하면서 발생한 고정비 지출 부담을 줄이고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전략이다.
현대차는 지난 3월 실적 부진으로 가동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베이징 1공장 가동 중단을 결정하고 폐쇄를 단행했다.
2002년 첫 가동 이후 17년째를 맞은 베이징 1공장은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여파로 판매량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지난 2년간 가동률이 50% 아래로 떨어졌다.
현대차는 베이징·창저우·충칭·쓰촨 등 6개 공장에서 연간 181만 대의 신차를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중국에서 79만177대의 차량을 판매하는 데 그쳤다.
기아차 역시 동풍웨이다기아의 옌청 1공장을 웨이다그룹에 매각하고 손을 뗐다.
기아차 옌청 1공장 역시 연간 생산량은 15만 대 수준이었으나 최근 판매부진으로 인해 가동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었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4월 직접 중국 현지로 날아가 2곳 공장의 폐쇄와 사업구도 재편을 최종 정리하기도 했다.
현대기아차는 “중국 생산 판매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장기적 공장 운영 계획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현대기아차의 최근 투자 전략이 대대적인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2010년대 초까지 양적 성장을 앞세워 생산 및 설비투바에 집중했다, 10조5000억 원을 들인 서울 삼성동 사옥부지 매입도 유형 자산 중심의 투자 행태를 증명한 사례다.
반면 정의선 수석부회장 취임 이후 대부분의 투자는 무형자산 및 첨단 기술 경쟁력 확보에 방점이 찍혀있다.
커넥티드카와 친환경차,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투자를 대대적으로 단행해 점차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들의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이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투자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투자 대상이 공장 등 하드웨어에서 기술 등 소프트웨어로 변화 중”이라며 “자동차 기술의 급격한 변화가 두드러지는 만큼 외형 확대보다 기술 확보에 돈을 쓸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