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연말 조직개편을 앞두고 신탁사업부를 자산관리(WM)와 통폐합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재발 방지 대책안을 내놓으면서 고난도 사모펀드뿐 아니라 신탁 상품도 은행에서 판매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신탁 상품 규제안을 발표하자 은행권은 이에 반발, 신탁사업부를 조정하는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탁을 사모로 분류하는 것이 지나친 규제라고 주장하면서도 정부의 강행 의지가 큰 만큼 사전에 대비책을 세워 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미 일부 시중은행은 신탁사업부와 WM 조직을 통합하는 등 관련 조직개편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는 14일 DLF 사태 재발 방지 대책안을 내놓으면서 고난도 사모펀드뿐 아니라 신탁 상품도 은행에서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신탁은 공모펀드 수준의 규제를 받고 있었는데 고난도 사모펀드와 동일한 수준의 규제를 받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은행은 주가연계증권(ELS)을 편입한 특정금전신탁 상품을 주로 판매했다. ELS를 펀드로 팔면 ELF이고, 신탁으로 거래하면 주가연계신탁(ELT)이 된다. ELS는 상품 구조상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30%를 웃돌기 때문에 ELS를 편입한 신탁(ELT) 역시 고난도 상품에 포함될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위 뜻대로 ELT 판매 제한이 가시화된다면 은행의 전체 신탁상품 중 특정금전신탁, 특히 ELS를 편입한 상품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관련 조직의 개편이 뒤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 신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ELT 판매 규모는 42조8000억 원(잔액 기준, 파생결합증권신탁(DLT)포함)에 달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DLF의 경우 6월 말 기준 4조3000억 원 규모다. DLF 때문에 시장이 10배나 큰 신탁 상품 판매가 완전히 금지될 상황에 놓인 것. ELT 판매가 제한되면 은행 신탁사업부가 다룰 수 있는 상품은 공모형 주가연계펀드(ELF)나 공모형 상장지수펀드(ETF) 정도다. 하지만 이들 상품의 판매 규모는 미미하다. 연말 조직개편을 앞두고 신탁사업부가 축소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중은행은 판매가 금지된 신탁 중 공모 신탁은 허용해 달라고 주장한다. 전날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신탁은 사실상 사모라고 하는데 공모와 사모를 구분하는 것도 애매하다”며 “신탁에서 공모를 분리할 수만 있다면 금융당국도 오히려 공모 부분은 장려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탁을 공모와 사모로 구분하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원안대로 신탁을 사모로 보고 판매를 제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단 시중은행은 공모 신탁의 ‘계속 판매’를 금융위원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2주 동안 은행들과 논의한 후 최종 결론을 낼 예정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발표된 대책이 수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책안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 점도 수정이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