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현대ㆍ기아자동차는 고성능과 거리가 멀었다.
1990년대 초, 2도어 스포츠 쿠페 ‘스쿠프’를 내놓았을 때 외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스포츠카”라며 비아냥거렸다.
데뷔 초기에는 실린더마다 흡기밸브를 하나씩 추가한, ‘4기통 12밸브’ 타입의 알파 엔진을 얹었다. 이후 과급기인 ‘터보’를 추가해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 가속까지 9.7초를 기록하기도 했다.
국산차 가운데 처음으로 10초 벽을 뚫었던 차가 스쿠프였다. 우리 기준으로 차고 넘치는 고성능이었지만 세계 시장에 내놓으며 ‘스포츠카’를 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2010년 이후 현대ㆍ기아차가 점진적으로 스포츠 브랜드를 앞세우기 시작했다. 월드 랠리 챔피언십에 재도전했고, 이제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고성능 ‘N브랜드’도 론칭했다.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자 이제 전기모터를 앞세워 고성능 전기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질 계획이다.
출발점은 지난해 크로아티아 전기차 기업 ‘리막(Rimac)’에 지분을 투자하면서 시작했다.
리막은 2009년 창업자 ‘마테 리막’이 설립한 전기차 회사다. 설립 이후 현재까지 고성능 하이퍼 전기차 분야에서 독보적 강자로 자리매김 중이다.
독일 스포츠카 브랜드 포르쉐가 전략적 투자를 먼저 단행할 만큼, 고성능 전기차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리막은 애스턴마틴과 피닌파리나 등 글로벌 유수의 스포츠카 브랜드와 최고출력 1000마력을 넘나드는 ‘하이퍼(Hyper) 하이브리드’ 카를 공동개발한 바 있다.
나아가 2016년 리막이 개발한 ‘콘셉트1(원)’은 400m 직선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이른바 ‘드래그 레이싱’에서 페라리의 고성능 모델 ‘라페라리’를 가볍게 추월하며 눈길을 끌었다.
2018년 제네바모터쇼에서 공개된 ‘콘셉트2(투)’ 역시 최고출력 1888마력(ps)의 가공할 출력을 바탕으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를 단 1.85초 만에 주파하는 데 성공했다. 전 세계 언론은 물론, 자동차 기업들마저 깜짝 놀랐다. 현존 전기차 가운데 가장 빠른 순발력이기 때문이다.
특히 리막이 개발한 콘셉트2(C-Two)는 테슬라가 올해 출시를 공언한 고성능 전기차 ‘테슬라 로드스터’보다 빠른 순발력을 자랑한다.
리막은 이런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여러 자동차 업체들과 고성능 전기차용 부품 및 제어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현재 고성능 하이퍼 전기차의 모델의 소량 양산 및 판매도 추진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는 작년 8월 리막과 전략적 사업 협력을 체결한 이후 구체적인 제품전략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내년에 선보일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첫 번째 순수 전기차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시속 100㎞까지 득달같이 달려드는 슈퍼카 대신, 양산 고급차 브랜드의 순수 전기차로서 모자람이 없는 출력을 담을 것이라는 게 현대차 측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