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내놓은 조직문화 개편안 중 하나다. 전현직 금융회사 임직원과 금감원 OB(퇴직자)를 정기적으로 만나 불만과 조언을 듣겠다는 내용이다. ‘절대갑’ 오명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최근 윤석헌 원장은 이와는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 중단에 당국 책임론이 부상하자, 그는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국민께 송구하다”고 말했다. 문제를 인지하고, 비판이 쏟아진 지 반년 지난 사과였다.
이마저도 “인력과 역량에 한계가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책임자를 벌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금융사에 겨눌 칼 끝은 벼리면서, 당국 책임을 호소하는 투자자들의 목소리는 ‘송구’란 한 단어와 함께 시장의 메아리로 되돌렸다.
윤 원장은 대신 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융 소비자 보호처(금소처)’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원장보 2명을 총괄 책임자로 앉히고, 상품 약관 심사와 판매 상시 감시, 금융사 검사, 제재 안건 협의 등 막강 권한을 부여하는 게 골자다. 이를 위해 현재 6개 부서를 13개로 두 배 확대하고, 100여 명의 인력을 투입했다.
‘절대갑’에 맞먹는 ‘슈퍼파워’다. 곧장 금소처를 금감원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는 상충된 가치이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금소처를 분리했고, 우리도 8년 전부터 논의가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직접 독립을 지시했고, 문재인 정부도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결국 감사원이 직접 나서 2월 초 분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지만, 윤 원장은 한 달째 묵묵부답이다.
심지어 그가 ‘슈퍼맨’으로 불리는 금소처장에 자신과 비슷한 철학을 가진 A 교수를 밀고 있다는 후문까지 들린다. 소비자 보호라는 미명 아래, 금감원장 힘만 더 키우려는 의도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윤 원장은 금융당국 수장에 오르기 전 정부와 업계에 쓴소리를 마다치 않던 소신 있는 학자였다. “취약한 금융에 문제가 터질 때마다 정부 개입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성과주의를 도입하려면 낙하산부터 근절해야 한다”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그 덕에 금융 감독의 수장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는 수장이 된 지금도 화자(話者)에 머물러 있다. “개(금융사) 놀리며 곶감(감독 권한)만 찾는 호랑이(윤석헌)가 쑥(쓴소리)을 먹을 리 있겠는가”라는 한 금융사 임원의 한탄이 그에게 들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