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국제뉴스 중에서는 ‘마스크 해적질’이 눈길을 끌었다. 마스크 착용을 문화적으로 터부시하던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 사태가 악화하자 뒤늦게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면서 ‘마스크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독일 언론은 베를린 주정부가 중국 생산공장에 주문한 3M 마스크를 미국에 가로채기 당했다며 미국이 ‘현대판 해적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비난하고, 스웨덴은 프랑스 정부가 스웨덴의 한 마스크 제조업체에 웃돈을 주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갈 물건을 중간에 빼내갔다고 폭로하는 등 서방 선진국의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생필품 사재기도 미국과 유럽, 일본과 홍콩까지 전 세계에 만연해 있다. 마스크와 장갑 등 방역물품부터 화장지, 물티슈, 생수 등 생필품까지 동나고 있다. 영국 요크에 거주하는 한 간호사는 사재기 때문에 먹을거리를 못 샀다며 제발 사재기를 멈춰 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자 대형마트는 노인과 임산부 등 노약자,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종사자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별도의 시간을 설정해 운영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다행히 우리는 일찌감치 마스크 대란을 겪은 후 마스크 문제는 대체로 안정화됐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기꺼이 제한된 물량을 줄 서서 구매하고 며칠씩 마스크를 재활용하고 있는 덕분이다. 여기에다 재고 부족에 허덕이던 마스크 필터 원료를 정부가 해외에서 찾아내고 삼성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가세해 계약을 체결하면서 수십 톤을 확보해 숨통을 틔웠다. 중기부의 ‘자발적 상생협력기업’ 프로젝트 일환으로 삼성전자의 스마트공장 기술 지원을 받은 마스크 제조업체 4개사는 하루 생산량이 50%나 급증했다.
사재기도 국내에서는 코로나 사태 초반에만 반짝 일어났을 뿐 전혀 문제가 없다. 마스크는 물론이고 화장지, 식품, 생수 등 수십 년간 국내에서 제조업을 해온 전통과 관록의 내수 기업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산 진단키트의 맹활약은 이보다 더 잘할 수 없을 정도다. 진단키트를 비롯해 코로나 사태에 대응한 한국의 선진적인 의료 방역 시스템은 K바이오와 K의료 등 신한류로 번질 기세다. 문 대통령은 이틀이 멀다 하고 각국 정상들과 통화하면서 코로나19 방역 경험 공유·용품 지원 등을 논의하고 있다.
진단키트는 사스와 메르스를 경험한 진단 관련 민간기업들이 노하우를 쌓아 양산 시설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몇몇 기업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인되자마자 적자를 각오하며 발 빠르게 개발과 생산에 나선 결과다.
그러나 이 같은 한국의 선전에도 불구,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사태는 언제 끝날지 전혀 예측 불가다. 오히려 코로나 사태가 끝났을 때를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줄을 잇는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를 통해 “코로나19 사태가 세계 질서를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라며 “글로벌 무역과 자유로운 이동을 기반으로 번영하는 시대에서, 시대착오적인 ‘성곽시대’ 사고가 되살아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국 BBC방송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 경제가 즉각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세계화로 인해 전 세계가 서로에게 강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사람과 물자 간 자유로운 교류가 핵심가치인 세계화의 흐름이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세계 곳곳의 사재기 현상, 마스크 쟁탈전 등은 자국 우선주의와 반(反)세계화의 전조 증상으로 풀이된다.
반세계화가 확산될수록 수출주도형 국가인 우리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어려워질 수 있다. 정부는 지금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고 있는가. 코로나 사태 동안 전 세계에 자랑한 한국과 한국산 제품의 우수성을 어떻게 우리 경제와 미래에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에 대한 결과물이 만들어져야 할 시점이다. h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