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는 지난해 말 염리동 81번지 일대를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사전타당성 조사에 들어갔다. 사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 본격적으로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정식으로 조합을 출범시켜 사업계획을 세울 수 있다. 정비업계에선 구역 지정을 재개발사업 첫 단계로 평가한다.
이 같은 호재를 앞두고도 지역 주민 사이에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사전타당성 조사 소식에 투자자가 몰려올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잖아도 최근 염리동 일대엔 신축 주택이 늘고 있다.
염리동 81번지 일대는 대흥동 학원가, 서울지하철 6호선 대흥역ㆍ공덕역과 가까워 마포에서 몇 안 남은 '재개발 블루칩'으로 꼽힌다. 일대 부동산시장에선 적잖은 신축 주택이 재개발 조합원 지위를 노린 투자성 물건이라고 본다.
재개발준비위원회 관계자는 "동네 곳곳이 공사장이다. 올 들어 건축 허가를 받은 곳도 10곳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몇몇 건축업자와 공인중개사에서 비싼 값에 신축 건물을 팔고 있다. 결국 피해 보는 건 일반 투자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염리동에선 한 연립주택이 대지지분 가격으로 3.3㎡당 약 1억2000만 원에 거래됐다.
문제는 노후도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려면 주거정비지수가 70점을 넘겨야 한다. 주거정비지수 산출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구역 내 노후주택 비중이다. 재개발준비위 관계자는 "지난 연말 용역을 맡겨 계산해 보니 70점에 턱걸이 했다"며 "지금 같으면 70점을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은 2010~2015년에도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노후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재개발 구역에서 해제됐다.
예비 정비사업장으로선 주택 신축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건물 신축을 제한하려면 사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시ㆍ군ㆍ구에서 행위제한고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예비 정비사업장에선 우회로를 찾고 있다. 마포구 노고산동 정비예정구역 재추진 모임은 재개발 구역 지정을 위한 주민 동의율을 높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이 지역은 2009년 단독주택 재건축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지만 2013년 개발이 무산됐다. 구역 해제 후 건축 행위 제한이 풀리면서 노고산동에선 신축 빌라가 많이 늘었다. 모임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노후도는 어쩔 수 없는 문제다"라며 "주민 동의율 등 다른 부분에서 주거정비지수를 높이려 한다"고 말했다.
정비구역 지정 이후에도 신축 주택은 골칫거리다. 분양권을 노리고 신축 주택을 샀다가 정작 분양을 못 받는 피해자들이 적지 않아서다.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에 따르면 2008년 7월 31일 이후 지어진 신축 건물은 전용면적에 따라 분양을 제한받는다. 소유 전용면적이 재개발ㆍ재건축 단지에서 분양하는 최소 평형보다 작으면 분양을 못 받고 현금청산만 할 수 있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성북1구역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최근 전용면적 60㎡ 미만 건물 매입을 신중히 검토하라는 안내문을 냈다. 성북1구역 조합이 추진하는 재개발 단지의 가구당 최소 전용면적은 60㎡인데, 그보다 작은 건물을 소유하면 분양권을 받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성북1구역 토지 소유자 일부에선 추진위원회 정관을 개정해 전용 60㎡보다 작은 평형도 짓자고 주장한다. 오병천 성북1구역 재개발 추진위원장은 안내문에서 "정관이 변경된다면 토지 소유주 등 소유자 과반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신축 건물 전용 60㎡ 이하를 구제하려고 정관을 개정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고 반박했다. 성북1구역 조합원 사이에선 신축 건물 매입을 권하는 공인중개업소를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공유까지 한다.
한 정비구역 관계자는 "신축 건물이 너무 많이 들어서다 보니 부정적인 소식이라도 퍼뜨려서 투자자들을 줄여야 하나 걱정될 정도다"며 "공인중개사가 무리하게 신축 건물 투자를 부추기는 건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