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는 자동차 메이커의 ‘이미지 리딩카’다.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할뿐더러, 대체로 젊은 수요층을 대상으로 하기에 향후 ‘충성 고객’으로 만드는 데에도 꼭 필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간 한국 자동차메이커들은 이러한 스포츠카 시장을 소홀히 한 것이 사실이다. 현대차가 스쿠프-티뷰론-투스카니로 이어지는 쿠페를 내놓긴 했으나, 본격적인 스포츠카라고 하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다. 특히 승용차 고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승차감과 타협하는 바람에 스포츠카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하지만 현대차가 이번에 내놓은 ‘제네시스 쿠페’는 성격이 전혀 다른 차다. 지난 10일 제주도 해비치 호텔에서 신차발표회에 공개된 이후, 11일 미디어를 대상으로 열린 시승회에서 제네시스 쿠페는 정통 스포츠카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이 차는 그간 현대차가 내놓은 쿠페들과 달리 후륜구동 방식을 택했다. 스포츠카는 순간 가속성능이 특히 중요시 되는 차종이다. 따라서 출발 가속 때 무게중심이 뒤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후륜구동 방식 채택이 필수다.
스쿠프가 엑셀의 플랫폼을, 티뷰론이 아반떼의 플랫폼을 이용하는 등 기존 전륜구동 타입의 소형 또는 준중형차 플랫폼을 이용한 반면에, 제네시스 쿠페는 이름처럼 제네시스 세단에서 플랫폼을 가져왔다. 전후 무게배분은 54:46으로 62:38 정도를 기록하는 전륜구동차들에 비해 균형감을 이뤘으나 50:50을 기록하는 BMW M3에는 미치지 못한다.
새로 개발한 람다 RS 엔진은 제네시스 3.8 엔진(290마력)을 베이스로 흡배기 계통을 튜닝해 303마력으로 최고출력을 키웠다. 변속기는 수동 6단이 기본, 자동 6단이 옵션인데 시승차는 자동변속기만 준비됐다. 제네시스 세단과 같은 ZF의 자동 6단 변속기는 변속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빨랐다.
특히 정지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강한 휠 스핀이 일어날 정도로 폭발적인 가속력을 보여줬다. 이 정도라면 굳이 수동 변속기를 고를 필요가 없을 정도다. 다만, 패들 시프트를 적용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아 로체 이노베이션처럼 자동 4단 변속기를 단 차에 달 것이 아니라 스포츠카에 꼭 필요한 장비이기 때문이다.
공식 시승차로 준비되지 않았지만 시승차 대열에 숨어(?)있던 2.0 터보를 찾아내 잠깐 시승해봤다. 상대적으로 많은 수요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2.0 터보는 쎄타 엔진을 개량한 것인데, 0→시속 100km 가속시간 8.5초로 3.8 엔진의 6.5초와는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도 2.0 터보는 중저속에서 3.8 엔진에 비해 가속력에 더뎠으나, 일단 탄력을 받아 터보가 활성화되는 시점에서는 훌륭한 가속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가속성능을 최우선 시 하는 고객이라면 3.8 모델을 추천하고 싶다.
제네시스 쿠페에서 또 하나 놀라웠던 점은 핸들링과 주행안정감이다. 투스카니만 해도 승용차와 비슷한 헐렁한 느낌이 남아있었으나, 제네시스 쿠페는 웬만큼 흔들어 봐도 자세를 잃지 않는다. 고속 슬라럼을 가정하고 시속 100km에서 심하게 좌우로 움직여봤는데 안정감이 기대 이상이었다. 국내 최초로 적용된 모노튜브 타입의 쇼크 업소버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다만 시속 200km를 넘어서면 차체가 통통 튀는 느낌과 함께 접지력이 불안해지는 모습이 보였다. 시승도로의 사정이 나쁜 탓도 있겠지만 고속에서 조금 더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면 만점을 줄 수 있겠다.
제네시스 쿠페의 신발로 선택된 브리지스톤의 포텐자 RE050 타이어는 성능에서 이미 톱 클래스로 인정받은 제품이다. 투스카니 2.7 엘리사에서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PS2를 선택했던 현대차는 이번에 19인치로 올리면서 브렘보 브레이크 시스템까지 적용했다. 타이어와 브레이크 시스템에서 세계 최상급 스포츠카들과 같은 선택을 한 것이다. 시속 100km에서 급정거를 했는데도 제동거리가 상당히 빨라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주행성능에 대한 총평은 100점 만점에 95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면 세계 유슈의 스포츠카들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실내 내장재와 일부 마무리는 좀 더 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제네시스 세단보다 대시보드의 치밀함이 부족해보이며, 계기판 위쪽은 유격이 있었다.
레드 팩으로 마련된 붉은색 대시보드의 색도 세련된 느낌이 부족했다. 은색으로 마감된 센터페시아는 리얼 알루미늄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느껴졌다. 트렁크 안쪽에 철판이 그대로 드러난 것도 허술해 보인다. 3000만원이 넘는 차라면 이 정도 마무리를 보여서는 안 된다. 계기판의 조명이 어둡다는 지적도 나왔다. 슈퍼비전 클러스터를 적용하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제네시스 쿠페는 대한민국 스포츠카의 역사를 새로 쓸 모델이다. 기계적인 완성도는 많은 이들을 감탄시킬 만큼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끊임없는 업그레이드를 통해 완숙도를 높인다면 현대차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해줄 것이 틀림없다.
현대 제네시스 쿠페 380GT
레이아웃-------앞 엔진, 뒷바퀴 굴림, 2도어, 4인승 쿠페
엔진, 기어-----V6 3.8ℓ 가솔린 엔진, 303마력/36.8kg․m 자동 6단
길이×너비×높이-4630×1865×1385mm
서스펜션 앞/뒤--스트럿/멀티링크
타이어 앞, 뒤---앞 225/40R19, 뒤 245/40R19
연비, 가격-----9.2km/ℓ, 3392만원
BEST----------탁월한 가속력과 주행안전성
WORST---------일부 내장재의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