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 역사상 9번째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내면서 다른 신흥국들도 아르헨티나의 전례를 따르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지급 여력이 있음에도 코로나19를 핑계로 디폴트를 자처하면서 경기침체 혼란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다른 신흥국 채무에 대한 우려도 높이고 있다고 23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지적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전날 5억 달러(약 6200억 원)에 달하는 국채 이자 지급을 거부하면서 이 나라는 1816년 독립 이후 9번째 디폴트에 들어갔다. 직전 디폴트를 낸 2014년 이후로는 6년 만에 처음이다.
문제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지급 여력이 충분함에도 디폴트를 강행했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 외환보유액은 현재 약 430억 달러에 달해 이자 지급 능력이 충분했다. 이에 이번이 ‘기술적 디폴트’에 불과해 사태가 금방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2014년에는 헤지펀드와의 분쟁으로 인해 미국 법원이 이자 지급 정지를 명령받은 결과로 디폴트가 일어났을 뿐 아르헨티나 정부가 지급을 예정대로 실시할 의지가 있었지만, 지난해 12월 들어선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좌파 정부는 “중장기에 걸쳐 채무 변제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채권단에 대폭적인 채무 감면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이 6월 2일까지 채무 구조조정 협상을 연장하기로 합의했지만, 미래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불허다. 채무 재조정 대상이 되는 것은 주로 2005년 발행된 국채와 2016년 이후 미국 달러로 발행된 외채로, 그 규모는 총 660억 달러에 이른다.
정부가 제시한 개편안은 3년간의 상환 유예 뒤 이자 지급 총액을 62%, 원금은 5.4% 각각 삭감하는 것이다. 채권단 측은 “정당화할 수 없는 손실을 떠안게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블랙록 등이 내놓은 대안은 상환 유예를 1년밖에 인정하지 않고 있다.
페르난데스 정권에 대한 강한 불신감도 투자자들이 상환 유예 기간에 타협할 수 없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 정권은 코로나19를 이유로 재정 확장적인 정책을 내걸고 있는데 섣불리 3년의 상환 유예를 인정하면 재정 규율이 해이해져 다시 디폴트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채권단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점이다.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악화하고 있다. 경제는 지난해까지 2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통화 가치 하락과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 등 고질적인 문제도 여전하다. 이에 아르헨티나 정부의 대폭적인 채무 감면을 옹호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채무 재편 협상을 둘러싼 혼란은 신흥국 투자 위험을 재인식시켜 신흥국 전체로는 좋지 않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닛케이는 경고했다.
올 들어 코로나19 사태로 아르헨티나는 물론 중동 레바논과 남미 에콰도르가 디폴트에 빠졌다. 이들 3개국 모두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작지만, 연쇄적인 디폴트는 신흥국 자금유출을 가속화할 리스크가 있다.
시장은 다음 디폴트 후보로 중동 산유국 바레인을 꼽고 있다. 신용부도스와프(CDS) 시장에서 바레인의 프리미엄은 4.8%까지 올랐다. 이는 투자자들이 바레인의 디폴트 확률을 30% 이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