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인 A회사는 1조 원어치의 자산과 4000억 원의 부채를 갖고 있다.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자본은 6000억 원으로 계산된다. 그런데 주식시장에서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3000억 원에 불과하다. 장부상 6000억 원어치나 갖고 있는 회사를 시장에서 3000억 원밖에 안 쳐주니 엄청나게 싸 보인다. 이 얘기는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A회사의 자산 1조 원 중 재고자산과 유형자산의 합이 9000억 원이라고 가정해보자. 즉 생산시설을 갖추고 제품을 만들어 파는 전형적인 제조업이다. 회사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데 시장에서 반응이 아주 좋다. 실적은 당연히 잘 나온다. 그렇다면 A회사의 주가는 분명히 저평가 상태가 맞을 것이다.
회사 제품이 잘 안 팔린다면 어떨까? 당연히 실적이 안 좋게 나올 것이고 이는 주가에도 즉시 반영될 것이다. 제품의 스펙이 뒤처지고 요즘 트렌드와 너무 안 맞아서 앞으로 더 안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면 회사나 주주 모두 앞이 깜깜할 것이다. 회사는 이미 많은 돈을 들여 생산시설을 갖춰 놨고 제품을 많이 생산해 창고에 보관 중인데 투자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 과연 재무상태표에 자산으로 9000억 원으로 달아 놓는 게 타당할까?
집에 사용하지 않고 창고에 처박아 둔 오래된 살림살이를 1000만 원어치 갖고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미 사용가치는 상실된 것이다. 이 살림살이를 중고시장에 판매해 50만 원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50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1000만 원어치가 아닌 50만 원어치의 자산이 있다고 얘기할 것이고 950만 원은 이미 비용화되었다고 생각한다.
회계에서 자산은 미래 경제적 효익이 기업에 유입될 것으로 기대되는 경제적 자원이라고 정의한다. 즉 미래에 돈으로 회수할 수 있다면 자산으로 인식 가능하다. 반대로 미래에 돈으로 회수할 수 없다면 자산으로 인식할 수 없다. 이 회사는 유형자산과 재고자산에 이미 9000억 원의 돈을 다 썼다.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고 자산으로 인식한 이유는 미래에 충분히 회수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회수 가능성이 성립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으니 이제 최대 회수 가능한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는 손실로 떨어내야 한다.
회계장부에서 아직 손실 처리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주식시장에서는 이미 이 상황을 주가에 반영했으니 장부가액보다 한참 낮은 금액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히 지표만 봐서는 기업의 주가를 판단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 투자자는 저평가 종목인지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정답은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전반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정말 회사가 저평가 상태인지 확인하려면 회사가 보유한 금융자산과 차입부채의 순액을 계산해보면 된다. 회사가 보유한 현금, 예금, 주식, 채권, 투자 부동산 등이 갚아야 하는 차입금, 사채보다 많고 시가총액과 큰 차이가 안 난다면 정말 저평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단 회사가 보유한 재고자산, 유형자산, 무형자산 등 주요 영업자산으로 영업이익을 창출하고 있어야 한다. 영업적자이거나 영업이익이 계속 줄고 있다면 그동안 모아 놓은 금융자산을 까먹는 단계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돈을 계속 불리려면 회사는 성장해야 한다. 판매량을 늘려 나갈 수 있어야 하고 이익 달성이 가능한 손익구조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저평가 요건이 완벽하게 성립한다.
주식투자를 해서 돈을 쉽게 벌고 싶지만 사실상 그런 방법은 없다. 전설적인 투자자들이나 투자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 모두 이렇게 열심히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하지 재무비율에 의존하지 않는다.
누군가 단순한 지표 몇 개와 공식으로 투자를 논한다면 그 사람을 멀리하는 게 좋다. 기업 환경과 투자의 세계는 절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