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극단적인 대립을 불러온 법사위원장이 야당으로 넘어간 것은 한참 뒤였다. 1998년까지 법사위원장은 여당 몫이었다. 야당이 맡은 것은 15대 후반기였다. 여당이 1997년 대선에서 패해 야당이 됐음에도 법사위원장 자리를 고수했다. 제1야당 몫으로 관행화된 계기였다.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차지하면 그렇지 않아도 잦았던 날치기 법안 처리가 일상화될 수 있다는 여야의 공감대가 작용했다. 그렇다고 그 후로 야당이 그 자리를 독식한 것은 아니다. 16대부터 19대까진 야당이 맡았지만 20대 국회 전반기엔 여당으로 넘어갔다. 20대 후반기엔 다시 야당 몫이었다. ‘법사위원장 = 야당’은 관행일 뿐 이를 강제하는 규정은 국회법 어디에도 없다. 국회 본회의에서 다수결로 선출한다(41조)는 취지가 전부다.
여야가 법사위원장 자리에 사활을 거는 것은 ‘자구·체계 심사권’ 때문이다. 심사권은 다른 법과의 상충 여부를 살펴 법안의 완결성을 높이자는 게 당초 취지였다. 여야 모두 법조계 인사들을 집중 배치해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야 대립이 격화하면서 이런 취지는 사라지고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도구로 전락했다. 법사위원장 자리 악용에 여야가 따로 없었다. 주요 법안들은 법사위에서 사사건건 제동이 걸렸다. 많은 법안이 결국 문턱을 넘지 못해 폐기됐다. 법사위는 야당엔 ‘게이트 키퍼’였지만 여당엔 국회 운영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176석의 거대 여당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에 목을 맨 이유다.
결국 민주당이 이번에 법사위원장을 차지했다. 통합당은 반발했지만 여당의 단독 상임위원장 선출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막을 힘이 없다. 통합당이 상임위 강제배분에 항의해 일괄사퇴하자 민주당은 상임위도 단독으로 열었다. ‘단독’과 헌정사상 최초라는 ‘오욕’의 꼬리표도 여당을 막진 못했다. 슈퍼 여당 1당체제로 굴러갈 21대 국회의 예고편이었다. 야당과 협상하되 여의치 않으면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이런 자세라면 야당은 더 이상 존재 의미가 없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못할 게 없는 여당이다. 우당인 열린민주당과 손잡으면 어떤 법안도 단독 처리가 가능하다. 민주당 출신 박병석 국회의장(무소속)이 가세하면 국회선진화법 의결요건인 180석이다.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법사위원장까지 차지했다. 거칠 게 없다.
민심은 전혀 다른 얘기다. 슈퍼 여당을 만들어준 국민의 뜻을 살펴야 한다. 솔직히 민주당이 잘해서 압승을 거둔 게 아니었다. 희망이 없는 무능야당 심판에 따른 반사이익이 컸다. 국민의 뜻은 분명하다. 다수 의석을 토대로 책임정치를 구현하고 협치를 통해 정치를 복원하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행태는 이런 국민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정쟁이 지긋지긋하다는 게 야당을 무시하고 단독 국회를 운영하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출발부터 협치를 통한 정치복원이 멀어졌다. 당분간 여당만의 반쪽자리 국회가 불가피해졌다. 이건 책임정치가 아니라 오만과 독주다.
민주당은 처음으로 과반의석(152석)을 확보하고도 실패했던 열린우리당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불과 13년 전 얘기다. 열린우리당은 ‘싸가지 없는 말’로 국민의 화를 돋우었다. 급기야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학법 개정 등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힘의 정치로 민심을 잃었다. 100년 정당을 외쳤지만 3년 9개월 만에 간판을 내려야 했다. 정권도 내줬다. 높은 지지율은 한순간이다. 아침과 저녁이 다른 게 민심이다. 176석이라는 거대 의석은 양날의 칼이다. 잘 운영하면 한없는 축복의 자산이다. 거꾸로 오만과 독주는 화를 부른다. 열린우리당이 그랬다. 힘이 있을 때 더 낮아지고 겸손해야 한다는 게 열린우리당 실패의 교훈이다.lee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