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대목은 미국에서 대학 졸업자들의 평균 수명은 꾸준히 증가하였으나,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단순노동자들의 경우 이런 ‘절망에 의한 사망’이 급증하여,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인 전체의 평균수명이 단축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절망의 나라’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통계는 끝이 없다. 지난 50년간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꾸준히 감소해온 결과, 대졸 취업자들의 임금프리미엄이 80%를 상회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국 대학 등록금이 중하층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결국 미국의 교육제도는 계층 사다리를 원천적으로 부러뜨리며 사회양극화를 고착시키고 있다는 오래된 비판을 현실로 보여준다.
그 결과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미국 노동자들의 3분의 2는 비정규직이며, 이번 코로나 사태로 대규모 실업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결국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흑인과 유색 인종 노동자들이었다. 또한 그동안 공화당과 트럼프가 오바마케어 철폐 등의 각별한 노력으로 이들 저소득층 대부분이 의료보험 혜택에서 제외된 결과, 코로나 사망자의 절대다수가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흑인 노동자들이었다는 사실이 최근 미국 폭동사태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더해서, 코로나 사태에 의한 경제 마비를 극복하기 위하여 트럼프가 행한 정책은 모든 미국인들에게 트럼프 이름이 들어간 1200달러짜리 수표를 나누어준 것과 전대미문 수준의 돈풀기인 확장적 통화정책이다. 그 결과, 실물경제는 쓰러져 가는데 시장에 풀려 몰려다니는 유동성에 의하여 주식 등 여러 투기적 자산의 가격이 등락을 거듭하는 병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트럼프는 자산가격 거품에 의한 빈부격차와 금융 불안정성, 그리고 예측 불가능성 등 경제 회복에 큰 부담이 되는 변수들만 집중적으로 키워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몰락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 미국의 달러화가 과연 장기적으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 미 연준 내에서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절망의 나라’가 되어버린 미국에 미래는 있는가? 더욱 암울한 현실은, 이처럼 해체되고 있는 미국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적 공공재’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과 지도력을 가진 나라가 어디에도 없는, G0의 시대에 직면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패권국가가 모두 사라져버린, 국제질서가 진공상태가 되어버린 위기 국면에서의 유일한 해법은 다자주의 체제(multilateralism)의 복원이다. 이미 인류는 매우 감동적인 성공사례를 경험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세계를 열어주었던, WTO와 세계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에 의하여 주도된 브레턴우즈체제와 세계 안보질서를 지탱해온 국제연합(UN)체제 말이다. 이런 다자주의 체제를 설계하고 주도하였던 미국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이 모든 것을 뒤흔들면서 세계적 위기가 초래되었다. 절망의 길을 걷기 시작한 미국이 오는 11월 대선에서도 여전히 같은 길을 고집하는 선택을 할 경우, 세계의 선택지는 ‘절망의 미국’ 중심의 질서가 아닌 국가 간에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다자주의 체제를 복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