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미의 소비자 세상] 국민건강 직결된 의료광고 방송 허용은 신중해야

입력 2020-07-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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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공동대표

의료광고를 방송에서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 규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우려된다. 의료광고는 의료기관 개설자, 의료기관의 장 또는 의료인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사항과 의료인, 의료기관에 대한 사항(경력, 시설, 기술 등)을 신문, 잡지 등의 매체를 이용해 소비자에게 널리 알리거나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광고의 방송광고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의료법 제56조 제3항 제1호가 과도한 규제이고 국민의 생명권과 알권리를 침해하기에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최근 대한의사협회에 의견을 물어왔다. 진료과목별 의사들과 시민단체·법조계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대한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회 위원들은 이 안건을 논의하며 한목소리로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의료 소비자의 안전에 해가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다.

‘자본주의 꽃’ 이라 불리는 광고는 소비자에게 상품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물건을 많이 팔려고 허위·과장광고를 하는 기업들이 있고, 이런 광고는 소비자를 오인시켜 피해를 주게 된다. 소비자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허위·과장광고는 법으로 처벌하고 있는데, 심의기준을 지키면 웬만한 광고 표현의 자유는 보장된다.

하지만 의료기관, 의약품, 의료기기 등 소비자의 건강·생명과 직결된 광고는 일반 상품과 달리 엄격한 판단이 요구돼 별도의 관련법에서 규제를 하고 있다. 그래서 현행 의료법은 의료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56조 3항 1호에서 의료광고의 방송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방송광고는 매체 특성상 다른 광고매체에 비해 영향력과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자칫 문제가 있는 의료광고가 방송을 탈 경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

의료광고심의위원회 위원들은, 의료 방송광고가 허용되면 방송광고를 하는 의료기관이 우후죽순 늘어나게 되고, 의료기관들 사이에 경쟁이 격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오랜 기간 의료 소비자 보호운동과 환자단체 활동을 해와 의료 현장의 실태에 대해 잘 아는 시민단체 위원들은 다른 매체에 견줘 비싼 방송 광고비가 의료기관에 부담이 돼, 의료비 인상과 의료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료기관 입장에서 광고비 지출을 충당하려고 의료가격을 높이거나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데, 제한된 시간 안에 진료 환자가 늘어날 경우 의료의 질 저하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방송광고 허용으로 의료기관간의 광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 높은 광고비 부담을 견딜 수 있는 대형병원에는 호재가 되겠지만, 광고 여력이 없는 동네 의원은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어 ‘부익부 빈익빈’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가뜩이나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에 대한 환자들의 쏠림 현상이 심해져 동네 의원들의 경영이 쉽지 않은 게 의료계 현실이다. 의료 방송광고가 허용될 경우 광고를 많이 하는 대형병원에 환자가 몰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규제개혁위원회는 “방송을 통한 의료광고 제한이 ‘알권리의 침해’”라는 전제를 내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의료광고의 목적이 ‘소비자에게 의료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소비자를 의료기관으로 유인하는’ 데 있는 만큼, 이런 유인목적 광고를 제한하는 것을 ‘알권리의 침해’라고 보는 것은 부당한 판단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단체들과 환자단체들은 의료 방송광고를 전면 허용해서 얻게 될 소비자의 권리나 이익보다는, 부작용이나 사고로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방송광고가 허용되지 않고 있는데도 이미 방송에 출연하는 ‘쇼닥터’들로 인해 소비자들은 피해를 입고 있다.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케이블TV 가릴 것 없이 방송에 출연해 그다지 근거가 뚜렷하지도 않은 건강식품을 ‘사실상’ 광고해주는 의사나 한의사를 ‘쇼닥터’라 칭한다. 방송사들은 건강프로그램에서 전문가의 권위를 지닌 의사, 한의사를 내세워 특정 성분이 건강에 좋다는 내용을 장시간 내보낸다. 그런데 같은 시간대에 홈쇼핑 채널에서는 어김없이 해당 제품을 판매해 쇼닥터와 방송사, 홈쇼핑 방송사 3자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이 많다. 3자간의 커넥션으로 인해 방송의 공공성과 의사의 전문성·도덕성을 믿는 순진한 소비자들이 쉽게 현혹돼 별 효능도 없는 건강식품에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현행 의료법 아래서도 ‘쇼닥터’를 내세운 간접광고로 인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 의료법을 개정해 의료 방송광고를 본격적으로 허용할 경우 소비자는 경제적 손해뿐 아니라 건강까지 해를 입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의료 방송광고 허용문제는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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