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고령친화 TF’를 꾸렸다. TF는 금융소외 계층을 없앤다며 구성됐지만, 이름에서 보이듯 대상은 ‘고령인’을 겨냥하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이들은 모바일 앱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점포가 사라지면 금융거래를 할 수 없으며 젊은 층을 겨냥한 은행권의 마케팅에 눌려 혜택에서 빗겨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을 구제하기 위해선 정부가 나서서 고령인을 위한 앱을 개발하고 점포의 폐쇄를 막으며, 고령을 위한 상품을 개발하라고 금융권에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가 부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점포 폐쇄로 인한 불편함을 겪는 사람이 존재하고 모바일로 전환되는 상황 속에서 소외되는 계층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보안을 이유로 모바일 앱을 사용하지 않는 젊은 사람이 있고,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모바일 앱을 수월하게 사용해 지점을 방문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만약 69세임에도 유튜브 프리미엄으로 EDM을 틀고 하루를 시작하는 누군가에게는 고령 앱이 억울할 수 있다.
그중 하나의 정책인 보이스피싱 대응 방안은 ‘고령자’ 전용 스마트폰에 보이스피싱 방지 앱을 설치해 가족 등 지정인에게 통지하도록 하는 운영안이 담겼다. 이에 누구는 “내 자산을 가족에게 검열받고 싶지 않다”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이들에게는 고령을 위한 정책이 오히려 마뜩잖게 다가오는 것이다. 점포가 사라지는 세상에 고령층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말도 그저 하나의 편견에 불과하다.
정말 점포가 사라지고 세상에 모바일 앱만 달랑 놓인 세상이 온다면 노인은 그대로 방치되지 않을까. 아마도 이런 가설을 세운 뒤에 정부는 정책을 마련했을 것이다. 이제는 다른 가설이 필요하다. 점포가 사라지고 세상에 모바일 앱만 있다면 분명히 ‘소외되는 계층’이 있다고 말이다. 이것은 단어 하나만 바꾸면 되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소외되는 이들을 품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런 사람들이 ‘노인’이라 규정할 권리는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