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건강한 민주정치는 일정 정도의 사회적 통합에 기초할 때 가능하다는 점이다. 미국 국민의 13%에 달하는 흑인들은 아직도 미국 사회에 온전히 통합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와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차별은 어디든지 있다. 그러나 미국의 흑인차별 문제는 위험한 수준이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어떤 미국인들은 모든 미국인이 똑같은 가치의 투표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흑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투표소가 계속 폐쇄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는 투표를 위해 긴 시간 줄을 서야 하고 투표를 포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이것이 의도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 대한 사실상의 선거권 박탈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달러가 넘는 미국이 돈이 없어서 투표소를 설치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의 투개표 과정에서 분란이 일어난다고 해도 무장한 민간인들 사이의 무력충돌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아니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문제는 왜 미국에는 무장한 민간인들이 그렇게 많이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의 총기 보유 문제는 매우 특별한 역사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력과 치안력의 독점은 국가의 기본이다. 미국에서는 총으로 인해 매년 수만 명이 희생되는데도 총기 보유는 계속 늘어난다고 한다. 미국 정부와 경찰은 무엇을 하고 있기에 국민들이 그렇게 총에 집착하는 것일까.
삼권 분립과 사법부의 중립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들이다. 긴스버그 대법관의 사망 시점은 절묘하다. 그가 사망한 이후 벌어지는 사태는 미국 사법부 정치화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미국의 사법부 또한 특별한 역사가 있다. 그러나 사법부의 정치화는 민주정치의 금기 사항이다. 미국이라고 해서 정치화된 사법부가 민주주의에 이로울 리 없다. 선거도 시작하기 전에 벌써 이번 대선은 투표소가 아니라 법원에서 결판이 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대의정치와 주권재민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미국에는 우리의 선거관리위원회처럼 선거를 관할하는 전국적인 기구가 없다. 그래서 투표자 명단 확정, 투표소 설치와 같은 선거 사무가 지역별로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분란과 소송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말썽 많은 선거에 이번에는 우편투표 문제가 더해진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우편투표가 사상 최대로 늘어날 것이라고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가 ‘재앙’이라고 외치고 있고 그가 임명한 우정국장은 집배원들의 업무를 제한하고 우편물 분리 기계의 숫자를 줄였다고 한다. 그래서 우편투표가 이번 대선의 화약고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정한 선거는 민주주의의 시작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선거관리는 왜 이 지경일까. 이 역시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선거란 무릇 유권자들이 지장 없이 의사를 표시하고 그 결과가 정확하게 집계되어 당선자를 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미국 대선에서 투표와 개표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은 2000년 선거에서 보듯이 미국 대선에서는 진 후보의 승복이 결정적이다. 그러나 선거 절차가 훼손되면 승복이 어려워질 수 있다. 그다음에 벌어질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민주적이고 번영하는 미국은 모두에게 이로운 것일 게다. 그래서 이런저런 위기론들이 다 부질없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정치학 개론에 비추어 봐도 지금 미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문제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할지 모르나, 지금 미국의 모습은 트럼프라는 대통령과 코로나바이러스가 퍼펙트 스톰을 만드는 형국이다. 11월 3일은 전 세계가 긴장하는 날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