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호 씨(37·남·가명)는 공무원시험 준비만 10년을 했다. 공부가 부족하진 않았다. 최종면접만 3번을 봤다. 첫 5년은 합격이 손에 잡힐듯해 미련을 못 버렸다. 이후엔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으나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다. 나이는 많지만, 경력이 없어서였다. 박 씨는 “한 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포기하겠다”고 한다. 다만 그 말이 지켜질지는 스스로도 장담하지 못했다.
20·30대가 인생을 건 도박을 강요받고 있다. 일부는 대기업·공기업·공무원 취업에 수년을 허비하고, 일부는 ‘빚투(빚내서 투자)’에 뛰어든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5월 기준으로 올해 청년층(15~29세) 인구는 2006년보다 10.7% 줄었지만, 일반기업체와 언론사·공영기업체, 일반직공무원 취업시험 준비생은 50.7% 늘었다. 중소기업은 기피 대상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인식조사에서 3명 중 1명만 중소기업에 취업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미 취업에서 ‘한방’을 놓친 30대는 ‘영끌(영혼까지 돈을 끌어모은)’ 부동산 투자가 한창이다. 최근 거래된 서울 아파트 3채 중 1채는 30대 매입분이다. 20·30대 공통으론 대출을 통한 주식 투자가 늘고 있다. 2018년 말 가상화폐 열풍에 이은 ‘빚투’ 2탄이다.
굳이 이들의 잘못을 꼽자면 ‘하필이면 지금’ 20·30대란 것뿐이다. 대·중소기업 간 근로조건 격차는 벌어질 만큼 벌어졌고,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강남 개발(1983년) 이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집값은 아직도 오르는 중이다. 중소기업 취업은 ‘늪’이고, 저축으로 ‘내 집’ 마련은 옛말이다. 기성세대의 가르침을 따를 길이 없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이 겪는 문제를 ‘요즘 애들’의 문제로 치부한다. 갓 대학을 졸업했거나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나이에 왜 인생을 건 도박을 하는 ‘로또 세대’가 됐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청년세대에 대한 몰이해는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정치권은 좌절감과 박탈감을 외면한 채 청년수당,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선심성 정책만 쏟아낸다. 흔한 어른들은 좌절하는 청년에 ‘노오력(노력의 풍자어)이 부족하다’고, 힘듦을 거부하는 청년에 ‘근성이 부족하다’고 훈수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대가 분명한 삶의 목표를 두고 새로운 가치를 쫓는 게 아니라, 안전한 직업과 자산 투자에 매달리는 쪽으로 굳어지고 있다”며 “사회 관점에선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 등 쏠림은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이고, 집값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며 “결국은 어떤 문제도 해결 못 한 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