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이 ‘1조 8000억 원대 KT ENS 사기 대출 사건’과 관련해 하나은행에 ‘법정 리벤지 매치’를 걸었지만, 또 졌다. 재판과정에서 하나은행이 허위자료를 제공하고 직원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등 강도 높게 배상책임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투증권은 최근 하나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371억 원 규모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심 패소했다.
배상액은 2013년 KT ENS 협력사가 하나은행으로부터 300억 원을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한투증권이 지급보증을 선 금액과 지연손해금이다. 앞서 한투증권은 이를 법정 다툼 끝에 하나은행에 지급했다.
KT ENS 사기대출 사건은 KT ENS 협력사인 A사가 2014년 휴대폰 단말기를 납품받은 것처럼 매출채권 등을 위조해 1조8000억 원 규모 사기대출을 받아낸 사건이다. 매출채권 담보와 위조라는 점에서 현재 논란이 된 옵티머스 사기사건과 일부 유사한 면이 있다.
이번 소송은 사실상 한투증권의 '리벤지 매치'다. 하나은행은 2014년 5월 사기대출의 지급보증인이었던 한투증권과 신한금융투자를 상대로 지급보증금을 지급하라며 소를 제기했다.
과거 소송은 하나은행이 이겼다. 하나은행은 1심에서 패소했으나 2심에서 일부 승소해 한투증권으로부터 지급보증금 284억 원과 지연손해금 등을 받았다. 해당 판결은 대법원에서 기각되며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한투증권은 "허위의 가공채권을 실재하는 채권으로 잘못 알고 지급보증을 했다"며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계약 내용에 채권 실제 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한투증권은 "하나은행이 매출채권의 실재 여부를 확인할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오히려 한투증권이 매출채권의 실재성을 확인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재판에서도 쟁점은 하나은행의 선관주의 위반 여부와 직원의 불법행위에 따른 사용자책임 등으로 유사했다. 다만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하나은행이 금융감독원으로 받은 제재 등이 변론 재료로 추가됐다. 한투 증권은 이전 재판보다 날을 세워 공세에 나섰다.
한투증권은 재판과정에서 "하나은행 직원들이 은행법령과 은행업감독규정이 요구하는 주의의무를 위반해 부실대출을 자행했고, 그 과정에서 자사에 지급보증금을 요청해 손해를 입혔다"며 "하나은행은 이들의 사용자로서 불법행위 책임을 진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하나은행은 금감원으로부터 기관경고와 경영유의 등의 재제조치를 받고, 임원 17명, 직원 13명이 감봉, 정직 등을 당했다. 이를 근거로 민법상 방조에 따른 공동불법 행위자로서 배상책임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 "하나은행은 대출 실행 시 매출채권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를 확보한 다음 대출을 실행할 의무가 있음에도 그와 같은 매출채권의 실재성 확인과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으며, 이 때문에 매출채권 확인서가 위조된 사실 등을 알지 못해 대출을 실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나은행이 '비밀유지 확약서'를 쓰게 해 실제 대출 대상자와의 연락을 금지했다고도 주장했다.
재판부는 △하나은행 직원들의 행위와 대출사기 범행에 의한 한투증권의 손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고 △정보 제공 의무와 조사·탐지 의무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우며 △비밀유지확약서가 대출 대상자와의 연락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들어 원고 패소 판결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증권사가 은행을 상대로 소송하는 일이 흔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업무상 갑과 을로 엮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한 번 결론이 났던 사안을 두고 다시 소를 제기하는 사례는 더욱 드물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와 은행은 업무 특성상 갑과 을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며 "증권사로서는 은행을 상대로 소송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15일 해당 판결을 전달받았으며 항소 여부 등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