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등배정 무용론’만 남긴 SK바이오사이언스 청약

입력 2021-03-1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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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투자증권에 청약증거금 1억 넣으면 최소 5주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SK증권에 각 32만5000원씩 청약증거금 넣었어도 최소 5주 배정

SK바이오사이언스는 역대급 흥행기록을 세웠지만, 올해 처음 도입된 공모주 균등배정의 허점은 부각됐다.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균등배정 물량 이상으로 청약이 몰리면서 증권사는 ‘추첨’을 통해 주식을 배분하기에 이르렀고, 중복청약을 막지 못해 청약 열기가 과열되면서 증권사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 등 거래 시스템은 곳곳에서 마비가 발생했다.

10일 일반투자자 대상 청약을 마무리한 SK바이오사이언스는 최종 경쟁률이 335.36대 1을 기록했다. 총 63조6198억 원의 청약증거금이 몰리면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번 청약에서 중요한 건 금액이 아니다. 청약 건수는 총 239만8167건을 기록했는데, 이는 종전 최대치였던 카카오게임즈 41만8261건을 훌쩍 넘어선 수준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 또는 계좌가 청약에 참여했다는 의미다. 균등배정물량이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은 자금을 끌어오는 것보다 최대한 많은 계좌 수를 동원하는 게 배정물량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도 있어서다.

균등배정은 개인투자자 몫으로 나온 공모주식 물량의 절반을 청약을 넣은 사람들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방식이다. 비례 방식 배정 물량에 대해서는 종전처럼 증거금을 많이 낸 투자자에게 주식이 많이 돌아간다. 돈을 많이 넣을수록 많은 수의 공모주를 받아 갈 수 있는 기존의 청약제도가 결국 ‘돈 있는 자들의 게임’이라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금융당국이 올해부터 도입한 제도다.

문제는 청약에 참여한 계좌 수가 균등배정 물량을 넘어서면서 이른바 ‘추첨 청약제’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증권은 균등물량으로 총 14만5928주를 배정했는데, 39만5290개 계좌가 청약에 참여했다. 추첨을 통해 14만5928개 계좌에 1주씩 배분하고, 나머지 25만여 개 계좌는 균등물량을 한 주도 받지 못하게 됐다. 하나금융투자를 통해 청약에 참여한 투자자 6만여 명도 균등물량을 한 주도 받지 못하게 됐다.

심지어 균등배정으로 최소 1주씩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소액 청약에 참여한 이들은 청약에 따른 수수료를 냈지만 한 주도 받지 못한 경우가 발생했다. 현재 SK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비대면으로 청약을 해도 2000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나머지 증권사들은 비대면 청약 수수료는 무료지만, 영업점에서 청약할 때는 4000원에서 5000원가량의 수수료를 받는다.

또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에서 청약에 참여했다면 1주씩은 고르게 배분을 받고, 남은 물량은 추첨을 통해 나눠질 것으로 보인다. SK증권은 한 계좌당 2주씩 균등배분이 이뤄질 전망이다. 6개 증권사 모두 청약에 참여한 사람이라도 누군가는 5주를 받고, 누군가는 10주를 받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비례배정은 균등배정을 받고 남은 물량을 기준으로 배분된다. 가령 100주를 신청하고, 1주를 균등배정 물량으로 받았다면 남은 99주를 기준으로 비례배정에 참여하게 된다. NH투자증권의 경우 700주를 청약한 사람이라면 균등배정에서 최소 1주를 배정받고, 비례 물량에서 1주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약 2300만 원을 넣어 2주를 받은 셈이다.

이번 청약에는 증권사 간 ‘중복청약’을 막을 시스템이 없어서 복수의 증권사에 청약한 투자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때문에 NH투자증권에만 청약증거금 1억 원을 넣은 사람과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SK증권에 각각 32만5000원씩 넣은 이들이 배정받은 주식 수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또 중복청약에 따른 수요가 몰리면서 국내 증권사 MTS는 몸살을 앓았다. 청약 기간 대부분의 증권사 MTS와 HTS가 느려지는 등 불편이 접수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소액이라도 청약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영업점 대기 번호는 세 자릿수를 넘어가는 등 북새통을 이뤘다”면서 “또 중복 청약을 위해서 새로 계좌를 개설하려는 고객도 많아서 직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균등배정’ 방식을 적용한 공모주 청약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크래프톤, 카카오뱅크 등 대어급 기업의 기업공개(IPO)가 대기하고 있는 만큼 중복 청약을 방지할 시스템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이번 청약을 주관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다음 대어급 청약 때도 불합리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면서 “우리는 금융당국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지만, 실무진에서는 이 같은 청약 방식에 대해 불만이 크다”고 전했다.

다만 소액 투자자들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춘 것은 소기의 성과다. 지난 카카오게임즈 청약 당시 청약증거금에 청약 건수를 나눈 계좌별 평균 청약금액은 1억4000만 원이었지만 SK바이오사이언스는 계좌당 평균 2700만 원의 청약증거금을 넣은 것으로 집계됐다. 소액으로 청약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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