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신작 소설 '클라라와 태양'(민음사)을 출간했다. 이시구로는 책 출간을 기념해 이투데이를 비롯한 한국 매체들과 서면 인터뷰를 했다. 책은 노벨상 수상 이후 처음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책은 인공지능(AI) 로봇과 인간 소녀의 우정을 다룬다. 이시구로는 이번 책이 인간의 장기 이식을 위해 복제된 클론들의 이야기를 다룬 전작 '나를 보내지 마'보다 희망적인 소설이라고 했다.
"꽤 오래전 '나를 보내지 마'를 쓰고 있을 당시엔 제가 장르를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이 의식했습니다. 이 작품이 SF 장르로 분류되리라는 점을 의식했죠. 이번에 '클라라와 태양'을 쓸 때는 제가 어떤 허구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클라라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 로봇이다. 이시구로는 클라라에 대해 "10대 아이를 돌보고 그 아이가 외로워지지 않게 해주고 그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AI 로봇"이라며 "어떤 면에서는 집사와 같다"고 설명했다.
"클라라는 거의 백지상태에서 소설에 들어왔습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기계이기 때문에 그녀에겐 아무런 역사도 없습니다. 저는 클라라가 마치 세상에 갓 도착한 아기처럼 처음으로 인간을 바라본다는 점이 정말 좋아요."
이시구로는 클라라가 지능을 가진 기계이기 때문에 아주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점도 마음에 든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 가져온 편견과 가치관이 거의 없는 캐릭터이기 떄문에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간 과거에 짓눌려있는 인물이 등장했던 이시구로의 소설들과 대조된다.
"인간 화자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클라라는) 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로서 기술적 관점, 기계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독자들이 실제로 저를 따라서 세상을 순수하게 시각적인 차원에서, 마치 지능형 기계의 눈을 통해 보는 것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시구로는 AI의 발전에 대해 "개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AI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감시와 통제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자유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AI가 악용되지 않고 핵심 가치인 개인의 인권을 지킬 수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소설의 배경은 영국이 아닌 미국이다. 이시구로에게 미국은 영국보다 젊고, 사회가 불안정하고 늘 변화를 겪는 나라로 다가왔다. 변화를 겪으면서도 그것을 직접 개조할 방법을 찾지 못한 사회, 과학과 기술에서 엄청난 혁신이 일어났지만 사회는 아직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곳, 어두운 디스토피아적 사회이면서 스스로 정비할 수 있는 느낌을 주는 나라는 미국이었다.
이시구로의 소설 집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마무리됐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코로나19로 록다운을 겪었다는 사실이 이슈로 다가왔지만, 자신의 글쓰기나 생활 방식의 변화를 야기하진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노벨상 수상도 마찬가지다. "환상적이었지만, 다른 행성에서 일어난 일 같았고 내 일터로 돌아오자 모든 게 그대로였습니다."
이시구로는 자신의 책이 한국 '문화적 현장'의 일부를 이루게 돼 기쁘다는 소감도 전했다. 지난해 오스카 역사상 최초로 한국 영화 '기생충'이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것에 대해선 "한국의 대중문화가 훨씬 국제화했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지난 10~15년 동안 한국이 문화의 근원지로서 국제적으로 얼마나 중요해졌는지 말해주고 싶습니다. 과거 우리는 한국을 삼성과 같이 기술이나 자동차를 생산하는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은 K팝 같은 흥미로운 문화의 근원지입니다. 사람들은 한국을 흥미진진하고 현대적이고 새롭고 예술적인 작품들의 원천지로 여깁니다. 한국에서 읽히는 책들의 대열에 내 책이 함께하게 돼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