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두 가지 사례는 현재 세계가 기술력이 국가 경쟁력이 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인공지능(AI)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기술은 경쟁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기술력의 기반이 반도체 기술이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18%를 차지하고 있는 첨단 기술 품목일 뿐만 아니라 국력의 바탕이 되어 K팝 등 한류 문화 상품이 평가받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인프라로서 톡톡한 구실을 하고 있다.
작년 초부터 닥친 코로나19로 인해 이번 백악관회의를 촉발한 자동차용 반도체는 물론 백신과 배터리 등 주요 제품의 공급망에 자국 우선 민족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유럽 등 주요국은 자국 내 생산기반 마련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반도체를 안보 품목으로 취급하여 중국 기업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가한 바 있고, 바이든 정부에 들어와서는 유럽, 일본 등과의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이는 이번 반도체회의에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의 TSMC 등을 초대하였고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회의 주재를 한 점에서 알 수 있다.
2020년 기준 반도체 위탁생산(foundry, fab) 시장 점유율을 보면 대만의 TSMC가 54%, 삼성전자 17%로 압도적으로 TSMC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파운드리는 중앙처리정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같은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곳으로, AI와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시대 국가 안보를 결정하는 산업으로 현재 첨단인 5나노급에서 TSMC와 삼성전자가 경쟁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현재 양산을 추진하고 있는 3나노급에서 TSMC를 누르고 판세를 뒤집지 못한다면 우리 기업의 세계시장 제패는 요원한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메모리 분야에서 우리 기업이 선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D램 시장의 경우 2020년 2분기 기준 삼성전자가 43.5%, SK하이닉스가 30.1%를 점하고 있고, 낸드 시장의 경우도 작년 4분기 기준 삼성전자가 32.9%, SK하이닉스가 11.6%로 우리 기업이 아직까지는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대해 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시장에 맡기는 정책을 취해 왔다. 하지만 반도체가 안보 품목으로 외부경제(externality)가 있는 기술임이 드러난 지금, 이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술개발(R&D)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전문인력 양성을 통해 기술이 체화된 인적 자본의 공급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승패를 판가름할 차세대 3나노급 양산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고급인력의 공급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내년까지로 예상되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함으로써 강화될 국력은 미·중 간 갈등상황에서 우리의 협상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우리 기업 또한 일부 품목의 기술력 우위에 따른 안일함에서 벗어나 지속적인 투자를 통한 우위의 지속과 기술기업(Lab) 인수, 현지투자 등으로 새로운 분야의 기술 및 시장 확보 노력을 재삼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는 통상외교를 안보 차원으로 접근하여 우리 기업의 시장 진출 장애요인을 사전적으로 제거함은 물론 사후적으로도 신속히 제거할 수 있도록 체제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