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위험이 큰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녹취·숙려 제도가 도입된 10일, 은행권에선 90개가 넘는 상품 판매가 무더기로 중단됐다.
이는 금융당국 규정 고지가 제도 시행 일주일 전에 급박하게 이뤄진 영향이다. 해당 제도 하에서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선 이사회 의결, 상품설명서 수정 등의 과정이 필요한데,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10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기업은행은 이날부터 94개(중복포함) 상품의 판매를 멈췄다.
국민은행은 '삼성 KRX300 1.5배 레버리지 증권투자신탁(주식-파생형)' 등 21개 상품을, 신한은행에서는 '신한H2O글로벌본드증권투자신탁' 등 15개 상품 판매를 일시 중단했다. 우리은행 8개, 하나은행 25개, 농협은행 17개, 기업은행 8개 금융상품도 판매 중지 상품 목록에 포함됐다.
판매가 중단된 상품은 대부분 상장지수펀드(ETF) 자산을 편입한 국내주식 파생형 증권투자신탁이나 해외 채권 등에 투자하는 역외펀드다.
금융위가 이날부터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 시행에 들어가면서, 고난도ㆍ고위험 금융투자상품의 경우 모든 투자자들에게 2영업일 이상의 숙려 기간을 보장하고, 판매 과정을 녹취해야 한다.
이는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해소하고 유사한 피해 재발을 막고자 마련된 조치다.
문제는 고난도 금융상품의 정의,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에 필요한 절차, 투자설명서에 들어가야 할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담긴 '금융투자업규정 일부개정규정'이 제도 시행 1주일 전인 이달 3일에야 발표됐다는 점이다.
관련 내용 보완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운용사는 은행 측에 상품 판매 중단을 요청했다.
여기에 새 규정에 따라 고난도 상품을 판매하려면 은행이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리적 이유로 이사회를 열지 못한 은행들은 판매를 잠시 멈춰야 했다.
다만 판매가 중단된 90여 개 상품에 대해 은행이 투자설명서를 보충하고, 이사회를 거치면 판매가 재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