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과 중소기업의 이른바 '키코 분쟁'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지난해 하반기 환율 급등으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들이 최근 잇따라 법원에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내자 이에 대해 적극 대응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은행권은 그동안 정부와 여론을 의식해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으나 사태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사전에 이를 차단하기 위해 '대응사격'에 나선 것이다.
◆키코 피해 中企 가처분신청 잇따라
지난해 12월 30일 법원은 (주)모나미와 디에스엘시디가 SC제일은행과 맺은 키코 계약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자 이를 받아들였다. 즉 은행측의 책임을 일부 인정한 셈이다.
그러자 (주)BMC 등 7개 중소기업도 최근 외환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신청을 냈다. 기업에 불리한 구조로 짜여진 키코 계약으로 인해 큰 피해가 발생했으며, 계약 자체가 무효이므로 부당이득금을 돌려 달라는 주장이다.
그밖에 최근 키코 계약이 만료된 뉴인텍 등 중소기업들도 프라임, 로고스 등 4개 법무법인을 대리인으로 선임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을 준비중인 법무법인 관계자는 "피해 중소기업들이 법원의 효력정지 가처분 결정 이후 소송 준비에 적극 나서고 있다"면서 "10여개 기업이 추가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키코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본 중소기업은 총 487개이며 손실액도 약 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 손실 규모가 큰 상당수의 기업들이 피해소송에 적극 나설 전망이다.
이에 소송 대상 은행들은 법원에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소송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지난 5일 키코 계약의 효력을 정지시킨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이의신청 했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법원이 이의신청이 받아들인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라면서 "이의신청은 절차에 불과하며 서울고법에 항고하는 것을 전제로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권 법원 판결 반박 '지원사격'
이처럼 피해 중소기업과 판매 은행간 법적소송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은행권이 사태가 더욱 확산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지원사격'에 나섰다.
국내은행의 파생상품업무 담당 부서장들은 최근 긴급회의를 갖고 법원이 키코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것과 추가적인 소송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연합회는 지난 7일 "이번 가처분 결정은 금융산업 및 금융시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파생상품거래를 통한 환위험관리의 순기능이 부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파생상품시장이 위축될 경우 가격 변동을 전제로 한 상품파생 거래 역시 불가피하게 큰 영향을 받게 된다"며 "원유 등 대부분 원재료를 해외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산업의 특성상 상품가격에 대한 헤지 수단이 제한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환율급등과 같은 급격한 변화에 의한 사정변경을 이유로 해지할 경우 키코 상품뿐만 아니라 단순 선물환을 포함한 모든 환헤지 계약의 해지가 가능하다"면서 "이는 금융기관이 관련 환위험을 고스란히 떠안게 돼 파생상품시장의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법원이 가처분결정을 내린 이후 은행들은 파생상품 판매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기업의 환헤지가 다시 사각지대에 놓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최근 은행들이 파생상품을 판매하는 데 매우 방어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기업이 환헤지를 하려 해도 (파생상품) 가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따라서 법적소송의 장기화로 인한 중소기업의 2차적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보다 합리적인 대안 모색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