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전 공모가 산정은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과정으로 일부 기업은 공모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상장을 철회하기도 한다. 2016년 두산밥캣, 2018년 SK루브리컨츠 등이 대표적이다. SK실트론(구 LG실트론)의 경우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했지만, 사전 시장 수요조사에서 냉랭한 투자심리를 확인하고 공모를 스스로 포기하기도 했다.
때문에 IPO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적정 가격 산정에 골머리를 앓는다. 최근 증시에 활황세를 보이면서 IPO 철회 사례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논란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금융당국이 공모가 산정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우선 올해 하반기 IPO 최대어로 꼽히는 게임사 크래프톤이 최근 정정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서 몸값을 낮췄다. 이번에 책정한 크래프톤의 새 공모 희망가는 40만 원∼49만8000원으로 처음에 제시한 45만8000원∼55만7000원보다 5만 원 정도 내려갔다. 공모가 상단 기준 당초 제시한 몸값 보다 4조5000억 원 가량 줄었다. 이를 위해 실적 산정 방식을 바꿨고 비교기업도 대폭 수정했다.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다른 IPO에서도 이같은 사례가 나왔다. 진단키트 제조사인 SD바이오센서는 두 차례에 걸친 증권신고서 정정을 통해 공모가를 낮췄다. 이 역시 공모가 고평가 논란 때문으로, 최초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이후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과 비교기업 선정이 적합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두 기업 모두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금융당국의 정정 신고서 제출 요구가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금융감독원은 이들 기업의 공모가 산출을 놓고 평가 방식 등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증시 호황을 이유로 터무니 없는 가격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금융당국도 공모주 투자 광풍에 대한 위험 환기 차원에서 신고서 내용 보충이나 정정 제출 요구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의 평가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과 관련 업계의 중론이다.
지난해 상장한 하이브(옛 빅히트) 역시 IPO 당시 공모가가 밴드(10만5000원~13만5000원) 최상단인 13만5000원으로 결정되자 너무 높은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하이브는 상장 8개월 가량이 지난 9일 종가가 30만8000원으로 공모가의 2배가 넘는 가격을 보이고 있다. 시장이 기업의 가치를 이렇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크래프톤과 SD바이오센서의 공모가가 거품인지는 상장 이후 시장에서 판단할 것이다. 금융당국은 시장에서 결론내야 할 가격 논쟁에 개입해 기업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를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
특히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으로 충격을 받은 국내 증시는 유망 유니콘 기업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들 기업을 국내 증시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적절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