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역선택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상대 당의 약체후보를 밀어주는 불공정 행위다. A정당 지지자들이 B정당 경선이나 여론조사에 개입해 고의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거나 지지의사를 표함으로서 자기편에 유리하게 선거판을 조작하는 것이다. 능력 있는 후보는 경선에서 탈락하게 된다. 유권자들은 시고 맛없는 레몬 같은 후보를 본선에서 선택하도록 강요받게 된다.
국민의힘에서 역선택 논란이 뜨거웠다. 당 선거관리위원회가 여권 지지자들이 경선 여론조사에 개입할 수 있는 만큼 이를 막을 방법을 찾겠다고 한 게 계기였다. 지지율이 높았던 윤석열 후보는 환영했지만 홍준표, 유승민 후보는 강력 반발했다. 선관위가 대선 본경선에 50%가 반영되는 여론조사 때 여권 지지층의 ‘역선택’을 최소화하기 위해 후보 본선 경쟁력을 조사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조사 대상에서 여권 지지층을 제외하는 설문을 포함하지는 않되, 민주당 후보와의 일대일 가상대결 결과를 점수로 환산해 반영하는 절충형이다.
이로써 룰 갈등은 봉합됐지만 역선택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홍 후보의 지지율이 급부상하면서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홍 후보 지지율 급등이 역선택의 결과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사실이 아니다. 역선택 정황이 없는 건 아니다. 여야 후보 지지율에서 크게 밀린 홍 후보가 유독 범야권 후보 적합도에서 윤 후보에 앞서는 것은 역선택 말고는 명쾌하게 설명이 안 된다. 13일 리얼미터 조사서 홍 후보는 여야 후보 지지율에선 윤 후보에 10% 밀렸지만 범야권 후보 적합도에선 오히려 0.6% 앞섰다. 정권 안정을 바라는 응답자에서 홍 후보의 지지율이 윤 후보를 압도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거꾸로 정권 교체를 바라는 응답자에선 윤 후보의 지지율이 홍 후보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정권 안정을 바라는 응답자는 여권 지지자, 정권 교체를 바라는 응답자는 야권 지지자다. 범여권 지지자 중 일부가 홍 후보를 밀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렇다고 역선택의 결과가 결정적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다. 맞지도 않다. 홍 후보의 부상은 젊은층 지지와 직결돼 있다. 20대 남성 유권자 사이에서 ‘무야홍’(무조건 야당은 홍준표) 바람이 불고 있다. 거리낌 없는 직설화법의 사이다 발언에 젊은이들이 호감을 갖고 있다.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도 20대 지지율은 국민의힘이 더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홍 후보의 호남 지지율이 유독 높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역선택은 새로운 화두는 아니다. 여야 경선 때마다 불거졌다. 그만큼 역선택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의미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상대 당의 경쟁력 있는 후보를 떨어뜨리고 싶은 건 인지상정일 수 있다. 이게 현실화한다면 심각한 문제다. 역선택으로 유력한 후보를 잃은 정당은 정권을 놓칠 수 있다. 유권자는 허접한 후보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심각한 기본권 침해다. 대선은 최선 또는 차선이 아닌 최악을 피하는 차악의 게임이 될 게 뻔하다. 다행히 우리 정치사에서 역선택이 제대로 작동한 전례는 없다. 국민은 늘 현명했다. 그런 상식밖의 왜곡을 허용치 않는다. 역선택은 이론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화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국민이 고민하는 것은 역선택이 아니다. 도덕적 흠결이 없고 능력 있는 후보가 없다는 점이다. 현재 국민 눈에는 최선은 고사하고 차선의 후보를 찾기도 쉽지 않다. 여야의 유력 후보는 도덕성 시비와 여러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갤럽이 3일 발표한 조사서 차기 지도자 선호도 질문에 답하지 않은 응답자가 32%나 됐다. 여야의 콘크리트 지지층 30%씩 60%를 뺀 중도층 대부분이 마음 줄 곳이 없다는 의미다. 대선을 6개월 앞두고 대선 성패의 키를 쥔 유권자의 마음을 살 후보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여야 후보는 무책임한 퍼주기 경쟁과 네거티브 선거전에 올인하고 있다. 미래 비전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말 피하고 싶은 차악의 게임이 현실화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lee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