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질 게 터졌다”...‘헝다’ 사태가 드러낸 중국 금융시스템의 민낯

입력 2021-09-24 14:25 수정 2021-09-2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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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금융시스템 비약적 발전의 그늘, '그림자금융'
과거 부채 폭증, 시장 위기, 정부 개입 과정 반복
시진핑 '공동 부유' 기치, 해법 다를 가능성도

▲중국 선전에 위치한 부동산 재벌 ‘헝다’ 본사 앞에 항의하러 온 투자자들을 경찰과 보안요원이 제지하고 있다. 선전/AP연합뉴스
▲중국 선전에 위치한 부동산 재벌 ‘헝다’ 본사 앞에 항의하러 온 투자자들을 경찰과 보안요원이 제지하고 있다. 선전/AP연합뉴스
중국 부동산 재벌 ‘헝다’가 파산 위기에 내몰리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헝다가 밀려드는 채권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지, 실제 디폴트로 이어질지, 파산이 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이 어느 정도일지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약 350조 원에 달하는 부채를 기반으로 ‘모래성’을 쌓은 헝다 사태를 계기로 중국 금융시스템의 한계가 재조명되고 있다.

중국 금융시장의 최대 취약점으로 투명성 부족이 꼽힌다. 중국 금융 산업은 규모 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반면, ‘그림자금융’의 그늘도 짙다. 그림자금융은 정부 통제를 벗어난 비금융권에서 이뤄지는, 고위험 채권에 투자해 고수익을 얻는 유사 금융을 뜻한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그동안 중국 은행의 자산은 50조 달러로 불어났고 기업과 가계의 총 신용은 10년 전 국내총생산(GDP)의 178%에서 287%까지 급증했다.

그럼에도 은행 업계는 불투명성, 규칙 적용의 비일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 정부가 국영은행을 이용해 사람들의 예금을 값싸게 이용한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된 바 있다. 부동산은 그 부산물로, 가계는 자금을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국영은행 대신 부동산에 쏟아부었다. 건설 붐에 올라타려는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그림자금융을 이용, 막대한 부채를 끌어다 썼다.

또한 중국 금융시스템은 자본 배분에 있어서도 비효율적이다. 중국 기업들의 달러화 채권 발행 규모는 1조 달러에 달한다. 상당 부분은 해외 투자자들이 매입한 것으로, 중국 경제의 유동성 위기가 세계 경제 충격으로 전이되기 쉬운 배경이기도 하다. 300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한 헝다의 부채 포트폴리오도 유동성 위기에 취약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부채의 80%가량이 단기 채권에 해당한다. 중국이 갑작스럽게 과잉 대출 단속에 돌입하면서 타격이 곧바로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사실 헝다 사태는 중국 금융시스템의 취약점을 드러내는 최근 사례에 불과하다. 중국에서는 과거 수차례 그림자금융에 따른 부채 폭증, 시장 위기, 정부 개입, 사태 일단락의 과정이 반복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후 중국은 막대한 부채를 통해 경기부양 자금을 조달했다. 단기 고수익 투자 상품을 제공하는 그림자금융을 통해 자금이 주택과 기반시설에 흘러 들었다. 2013년 부작용 우려가 커지면서 당국은 대출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주택 가격이 급락했고 자본이 시장에서 빠르게 유출됐다. 2015년 중반까지 관련 업계의 채무불이행이 속출했다.

결국 중국 정부는 금리를 낮추고 자본 유출을 통제하면서 파산 관리에 들어갔다. 아파트 재고를 줄이기 위해 국영은행들은 ‘슬럼 재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주택 소유자들에게 아파트 ‘업그레이드’ 비용을 지원했다. 모기지 대출도 늘렸다. 지방 정부의 부외부채(대차대조표일 현재 기업의 채무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장부에 계상되지 않은 부채)는 중앙 정부의 암묵적 지원 방식인 지방채 시장을 통해 재융자됐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개입은 시스템 붕괴를 막았지만 그림자금융이 더 강하게 자리잡는 배경이 됐다. 이후 가계와 국가의 부채는 더 늘어났다.

위기는 2017년 또 한 차례 찾아온다. 2016년 말, 부동산 부문 회복과 함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자본 유출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면서 중국은 그림자금융 단속에 들어갔다. 특히 단기 레버리지 사용 억제에 초점을 맞췄다. 2017년 초 규제당국은 은행의 채권 기반 자산 관리 상품과 그림자금융 단속에 나섰고 연말 신용 증가는 또다시 둔화했다. 다만 미국 경제 호황에 따른 중국 수출 증가 덕에 부동산 재고가 줄면서 금융안정성은 관리 가능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2017년 단속 여파로 자산 관리 상품에 의존했던 소규모 지방 은행의 재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2019년 중반, 중국은 네이멍구자치구 지역 대표 은행인 바오상은행 인수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일부 부채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국영은행은 안전하다는 오랜 인식이 흔들렸고, 소규모 은행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시장은 중국 중앙은행이 금융 시스템에 막대한 유동성을 투입하고, 대출 축소 완화 방침을 밝힌 후에야 진정됐다.

그림자금융으로 성장한 후 위기가 찾아오면 정부가 개입, 관리에 나서지만 근본적인 개혁이 아닌 미봉책에 불과한 탓에 문제가 쌓여가는 일이 되풀이된 것이다. 헝다 사태는 그 연장선인 셈이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는 또다시 헝다발(發) 금융시장 충격을 잠재우기 위해 개입할 것인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에는 해법이 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적 판단이 과거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시 주석은 장기집권을 목표로 ‘공동 부유’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과거 후진타오 주석이 ‘조화로운 사회’를 기치로 시스템 개혁보다 소득불평등과 사회동요에 더 신경을 썼던 것처럼 시 주석도 정치적 명분을 쌓기 위해 어느 정도의 경제 충격을 감내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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