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타이어가 무슨 디자인상을 받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가 세계 3대 디자인상을 석권했다는 소식에 많은 소비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차량 안전을 책임지는 타이어는 오히려 차보다 디자인 측면에서 한걸음 앞서야 한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11월 ‘도시 재구성’을 주제로 다가올 미래 도시 콘셉트로 제시했다.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비전은 물론, 대안까지 마련한 연구개발 콘셉트였다. 세계 디자인 업계는 한국타이어의 이런 방향성에 주목했고, 디자인 역량을 인정했다.
타이어 디자인은 자동차 디자인과 출발점부터 다르다. 선과 선이 만나는 자동차 디자인과 달리 타이어 디자인은 이보다 더 먼 미래를 내다본다.
단순하게 '트레드(타이어와 도로가 맞닿는 면)' 모양을 디자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 것. 자동차가 현실을 그려낸다면 타이어 콘셉트는 이상을 담고 있다. 이들의 콘셉트가 언제나 자동차보다 한 걸음 앞서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날카로운 경계선을 넘나들며 사는 한국타이어 디자인팀 이명중 책임 디자이너의 직접 들었다.
◇올해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본상 받아
한국타이어는 지난 4월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21’에서 콘셉트 부문 본상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첫선을 보인 콘셉트 ‘HPS(Hankook Platform System)-셀’이 주효했다.
7월에는 ‘레드닷 어워드 2021’ 본상에도 올랐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달 ‘IDEA 2021’에서 자동차 및 운송 부문 ‘파이널리스트(Finalist)’에도 이름을 올렸다. 명실상부 세계 3대 디자인상의 본상을 모두 석권했다. 동시에 한국타이어가 지닌 세계 최고 수준의 디자인 경쟁력도 입증해 냈다.
디자인팀 이명중 책임 역시 밤잠을 줄여가며 머리를 쥐어 짜낸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이번 수상의 배경으로 조직력과 팀워크를 꼽았다.
“훌륭한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는 솜씨는 물론 중요합니다. 이와 함께 소통을 통한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역량이에요. 시장의 요구부터 타이어의 성능 구현까지 기획하고 디자인합니다. 이후에는 공학 부서와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도 필요해요. 디자이너로서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면 제대로 된 제품을 개발할 수 없는 셈입니다.”
새로운 흐름을 발 빠르게 좇아가며 시야를 확대한 것도 이번 수상의 밑거름이 됐다.
“유행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디자인은 하나의 독립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창작 활동이 아니에요. 다양한 분야와 유기적인 소통이 필수입니다. 그러다 보니 넓은 안목은 필수인 시대죠.”
“한국타이어 디자인팀만 해도 산업디자인과 자동차디자인, 자동차 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근무하고 있습니다. 기술력 중심의 양산 타이어 디자인은 물론이고, 상품 경쟁력 강화를 위해 최신 유행을 자세히 분석하고 결과와 대안까지 뽑아내고 있습니다. 미래 타이어 연구 등 다양한 혁신 프로젝트도 저희 몫이고요.”
그는 반복된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그래서 이번 3대 디자인상을 거머쥔 결과물 HPS-셀에 대한 애착도 강했다.
“한국타이어는 미래 드라이빙과 혁신 모빌리티 산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2년에 한 번씩 ‘디자인 이노베이션’을 진행해요. 변화될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비전과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연구개발 사업입니다. 이번 콘셉트는 '타이어에서 시작한 변화가 우리 삶까지 바꾼다'는, 한 마디로 ‘도심의 재구성’이라는 주제에서 시작했습니다. 용도별로 다양한 ‘포드(Pod‧차체)’를 플랫폼 위에 얹어 최적화된 이동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물론 성격에 따라 타이어 스타일도 바꾸는 개념이에요.”
HPS-셀은 하나의 플랫폼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타이어 위에 다양한 차체를 얹는 개념을 넘어 타이어 트레드까지 바꿀 수 있는 방식을 담았다.
이 콘셉트는 기본적으로 격자 형태의 비공기압(에어리스) 타이어다. 센서 기술을 활용해 타이어 트레드와 노면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 위험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 가변 휠과 최적화된 인프라를 맞물리면 노면에 맞는 타이어 패턴을 빠르게 바꿀 수 있다.
예컨대 노면 변화를 감지하면 주변 스테이션에 찾아가 해당 노면에 맞는 트레드를 바꿀 수 있는 개념이다. 교체 시간도 순식간에 마칠 수 있다.
“생체모방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콘셉트를 개발할 때는 내가 디자이너인지 생물학자인지 헷갈릴 정도였어요. 그만큼 셀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다행히 결과가 헛되지 않았고요, 세계 3대 디자인상 석권이라는 좋은 결과까지 이어지니까 뿌듯했습니다.”
글로벌 디자인 업계가 한국타이어 디자인에 관심을 쏟게 된 비결도 꼽았다.
“치밀하게 분석한 미래 환경의 예측이 주효했습니다. 또 그에 따른 대안을 잘 풀어낸 결과에요. 특히 2014년에 레드닷 어워드 ‘루미나리’ 수상은 아직도 국내에서 상을 받은 곳이 우리 회사밖에 없어요. 그만큼 디자인 역량이 강화된 것이지요. 내심 그 기록이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자동차는 빠르게 전기차를 포함한 미래형으로 진화 중이다. 타이어 업계는 어떤 변화를 맞고 있고, 어떤 전략을 추진 중일까. 그의 대답은 방대했으나 각각의 뚜렷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었다.
“전기차 특유의 강한 출력, 배터리 무게, 엔진이 사라지면서 증가한 소음 등에 최적화된 타이어를 위해 업계 또한 발 빠르게 대응 중입니다. 타이어를 개발할 때 특정 부문의 성능을 끌어올리면 다른 분야의 성능이 떨어지게 되는 이른바 ‘트레이드오프(Trade-off)’가 존재해요. 이를 최소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친환경 차 타이어를 개발할 때에도 유기적인 조직과 팀워크는 필수다.
"혹독한 성능조건에 맞춰 패턴디자인과 기술개발이 융·복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를 통해 성능을 결정짓는 패턴 디자인 요소, 컴파운드(타이어 재질)와 프로 파일 형태 등에 대한 개선은 물론, 각종 센서기술의 장착이 필요하게 되어 더 나은 사용자 경험으로 자동차와 사용자의 안전성을 확보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