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 후 서울에 올라왔다. 회사의 신속한 출근 명령에 집을 구할 새도 없었다. 다행히 지인이 운영하는 고시원에 잠시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러나 고시원 방문을 열자 숨이 턱 막혔다. 한 평 남짓한 방엔 창문 하나 없었다. 침대는 누우면 발이 벽에 닿을 정도로 작았고, 바닥에 캐리어를 열어 놓으면 서 있을 공간마저 사라졌다. 에어컨은 중앙제어였고,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은 복도 끝에 있었다. 그때 처음 집의 소중함을 느꼈다. 하루빨리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렇게 고시원 생활 3주 만에 꽤 괜찮은 원룸을 구했고 현재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더 나은 집, 더 나은 환경에서 살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니라 본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동산부 기자가 되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니 세상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쪽방에 사는 한 할머니는 개인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기를 원했고, 한 어머니는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아이를 위해 여러 학군이 있는 아파트에 살기를 원했다. 달동네에 사는 할아버지는 재개발을 원했고, 준공 30년 차 노후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는 리모델링을 원했다. 저마다 방식과 정도에 차이는 있었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집과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똑같았다. 집을 나와보니 비로소 그들의 간절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처럼 내가 직접 겪어보니 그들의 간절함이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취재 중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배수관에서 녹물이 나오고, 주차 공간도 부족해서 재건축이 시급한데 할 수가 없어요.” 최근 규제가 강화되면서 예전에는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재건축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얘기다. 정부는 재건축을 집값 상승의 주범이라고 봤다. 더 나은 집과 환경에서 사는 것을 정부는 본능이 아닌 욕심으로 간주한 셈이다. 나는 생각했다. ‘정부 관계자도 집 한번 나와보면 이들을 이해할 수 있을 텐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