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사회가 러시아에 대한 전면 제재를 예고해 다국적 기업의 고심도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도 경제 제재에 동참하기로 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투자해 온 국내 기업들 역시 비상경영에 나섰다.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러시아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은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PSA와 FCA가 합병해 세계 4위로 차 업체로 올라선 스텔란티스는 러시아 생산을 축소한다. 나아가 공장 이전도 검토하고 있다.
프랑스 르노는 러시아에 공장 2곳을 운영 중이다. 르노 역시 “긴장이 악화하면 또 다른 공급망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과 함께 대응 마련에 나섰다.
금융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은 이번 제재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보다 큰 규모가 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해당 지역 진출 금융사들은 거래 중단으로 손실을 보는 것은 물론 러시아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금리 상승에 내몰릴 가능성이 있다.
국내 기업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재 러시아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차·기아·포스코·아모레퍼시픽·오리온 등 한국 기업 40여 곳이 진출해 있다. 이들 기업은 20~25%에 달하는 관세를 피해 현지에 생산 설비 등을 구축하는 등 사업을 확대해온 다국적 기업이다.
당장 가전업계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우크라이나에 판매사, 러시아에 생산법인(지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생산분은 러시아 내수시장 또는 독립국가연합(CIS) 등에 팔리고 있어 당분간 이 시장은 없어진다고 봐야 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당장에 닥칠 큰 여파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이어질 국제유가의 상승과 금리 인상, 소비심리 위축 등 2차 여파를 주시하고 있다”고 경계했다.
자동차업계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기준 러시아 공장(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약 23만 대의 완성차를 생산했다. 현지 판매 법인을 통해 지난해 기아 20만6000대, 현대차 17만2000대 등 총 38만 대의 신차를 판매했다. 특히 현대차는 지난해 연말부터 GM 러시아 공장을 인수해 가동에 들어간 상태여서 이번 사태로 향후 피해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에서는 가장 우려되는 피해로 생산 차질이 아니라 대금 회수라고 꼽는다. 러시아 제재가 본격화하면 판매대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일부 회수가 가능하다 해도 러시아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환차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사태로 인한 우리 기업의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산업 안정기금 △긴급 수출안정자금 △단기수출보험 할인 △수출신용보증 보험 및 보증료 할인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재계는 한목소리를 낸다. 여기에 러시아 현지 공장의 생산량 감소분을 국내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주 52시간 근무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현실화한다면 국내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다수 포진해 있는 자동차, 자동차부품, 화장품, 합성수지 등을 중심으로 교역 차질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