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주일을 맞았다. 민간인 주거지역에까지 무차별 포격에 나서는 러시아의 비인도적 행위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이 커지고 있지만 수십 년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해온 미국은 한 발 물러서 있는 모양새다. 미국은 EU 등과 러시아를 스위프트(SWIFT, 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제외하는 등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혹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한 우크라이나 파병은 피하고 있다.
지난 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연설에서는 이같은 기조가 다시 확인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 의회에서 열린 국정연설에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 군대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과 교전하지 않으며 충돌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직접적인 파병을 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직접 파병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다소 냉정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인접국도 아닐뿐더러 동맹국도, 미국과 다자간 안보동맹을 맺은 국가도 아니다. 인접국이 아니기 때문에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우크라이나에 미국이 굳이 나설 이유가 없다. 또한 미국은 일반적으로 한미동맹처럼 양국간 혹은 나토처럼 다자간 안보동맹을 맺는데, 우크라이나는 이 중 어느 방식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넘어 계속 서쪽으로 진격할 것을 대비해 폴란드, 독일 등 나토 가입국에 병력을 보낼 뿐 우크라이나에는 파병하지 않고 있다.
명분 외에도 대외적 요인이 하나 더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함으로써 러시아와 직접 충돌할 경우 전쟁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과 러시아는 모두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로, 이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피해는 예상하지 못한 수준으로 불어날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지난달 10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를 향해 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세계대전”이라며 “우크라이나 사태는 테러리스트 조직을 다루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군대를 상대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지 않는 이유는 파병이 미국의 안보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대외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물론, 지난해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고려하면 미국은 오랫동안 담당해온 ‘세계 경찰’의 역할을 스스로 내려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미국의 이러한 행보가 중국-대만 관계에서 대만의 안보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국의 국내 정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 직접 나서기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가 산재해 있다.
최근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며 경제적으로 큰 불안 요소를 안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양적 완화 기조를 이어온 후유증이 나타나는 상황인데, 금리인상·양적 긴축까지 앞두고 있어 경제가 불안정한 상황이다. 지난 1일 바이든 대통령은 첫 국정 연설에서 “나의 최고 우선순위는 물가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보다 인플레이션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미국 국민의 전쟁 참여 반대 여론도 거세다. AP통신이 지난달 18~21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와 함께 미국 성인 1289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26%에 그쳤다. 반대로 72%가 부정적인 답변을 했는데, 절반이 넘는 52%는 중요하지 않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답했고, 20%는 아예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2001년 9·11 테러가 발단이 된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전쟁 수행 지지율이 70%가 넘었던 상황과 반대된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정치적 위기를 겪고, 전쟁 반대 여론이 강한 상황에서 미국이 직접 참전하기에는 그 위험이 너무 크다. 특히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은 파병을 통한 직접 참전을 선택하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