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과의 대화를 녹음하기 위해 식당 주인 모르게 카메라를 설치하러 음식점에 들어간 것을 주거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를 주거침입으로 인정한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 판례가 25년 만에 바뀌게 됐다.
대법원 전합(주심 노태악 대법관)은 24일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 씨 등 2명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 씨 등은 회사에 부정적인 기사를 쓴 기자를 만나 식사를 대접하면서 기자가 부적절한 요구를 하는 장면을 확보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식당 주인 몰래 녹음·녹화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음식점 내 방실에 출입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재판에서는 일반인 출입이 허용되는 음식점에 대화 상대방과의 대화를 녹음하기 위해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러 들어간 행위가 주거침입죄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유죄로 인정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으나 2심은 무죄로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에 영업주의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으로 들어간 경우에는 설령 영업주가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더라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1997년 3월 선고된 초원복집 사건 판결이 뒤집혔다. '초원복집 사건'은 1992년 12월 14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부산시장 등 기관장들이 음식점에 모여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통일국민당 관계자의 도청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지역감정 조장을 폭로할 목적이었으나 오히려 이를 도청한 관계자들은 재판을 받게 됐고, 주거침입죄가 유죄로 인정됐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됐는지에 따라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