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아트홀을 가려면 지하철 왕십리역에서 내려 9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2호선에서 내리면 5분 정도 걸으면 되고, 5호선은 8분 정도 걸어야 한다. 수인 분당선이나 경의·중앙선에서 내리면 넉넉잡아 10분은 걸린다. 물론 이 기준은 내게 해당한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힘이 들긴 하지만, 가능한 일이다. 불편하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가 지난달 내내 화제였다.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퍼포먼스로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화제의 중심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있었다. 각종 커뮤니티에선 전장연 시위를 둘러싼 공세가 이어졌다. '다수의 장애인은 이미 장애를 무기로 쓴다'는 지인의 SNS 글을 봤을 땐 참담했다. 마치 전장연이 시민들을 괴롭히는 악의 무리가 된 것 같았다.
비장애인은 너무나도 편하게 지하철을 이용하기 때문에 장애인이 얼마나 힘든지 공감하지 못한다. 쉽게 지하철을 타고 내릴 수 있다. 이와 달리 장애인에게 지하철을 타는 일은 목숨을 거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휠체어를 탔거나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이 소월아트홀을 가려면 왕십리역에 내려서 9번 출구로 나올 수 없다. 9번 출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계단만 있고, 에스컬레이터도 없다. 멀리 떨어진 4번 출구로 나와 건널목을 두 개는 건너야 한다. 오는 길엔 쌩쌩 달리는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몇 대는 지나간다.
오랜 기간 이동권 보장을 외쳐왔지만, 여전히 목숨 걸고 지하철을 타야 하는 장애인들이다. 고작 출근길 10분 불편하다고 삿대질하기엔 너무 가혹하다. 우리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들이 이동권 보장을 외칠 수 있다면 10분 정도는 아깝지 않다.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가 다시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혹시 생기더라도 10분 정도 양보하면 어떨까. 만약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하철을 타야 한다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장애인을 '악의 무리'로 몰아가는 행동이 아니라, 10분을 내어주는 공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