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이 강경해지면서 남북 화해협력도 부침이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전까지 통일부는 남북 화해협력의 기조를 유지해 나갔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북핵 문제의 하위 구조로 놓음으로써 북핵 문제도 남북관계도 진전시키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는 초기 유연한 대북 접근을 시도하였으나 북한의 잇단 핵실험으로 인한 북한 붕괴론에 매몰되어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계기를 만들지 못했다. 그런 맥락에서 통일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자성론에 부딪히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판문점 선언을 통해 평화의 봄을 만들면서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분야별 남북대화의 복원, 남북연락사무소의 출범 등 통일부는 다시 평화와 통일을 위한 일선에서 국민적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북정책이 청와대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남북화해의 장이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통일부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못했다. 게다가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관계의 냉각은 남북관계의 경색 국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북한의 국경봉쇄,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등 남북관계는 바닥에서 회복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종전선언 추진을 토대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재시동하려 하였지만, 북한과 미국의 소극적 태도와 임기 말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5월 10일 윤석열 새 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한 국제 정세와 한반도 정세는 실로 복잡다단하다. 미·중 전략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제 정치경제 정세가 불안정하고 군비경쟁과 진영 간 대결이 격화되고 있다. 북한은 정세 변화에는 아랑곳없이 올해만 13차례의 미사일 발사를 통해 국방력 강화를 과시하고 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통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북한과 조건 없는 대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나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북한의 무응답이 길어질수록 남북대화의 주무부서인 통일부의 역할도 강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통일부는 정책의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전열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북한 정세 분석의 노하우를 살려 새 정부에서 북한을 어떻게 다뤄나갈지 북한의 정세를 예측하고 현안 대응에서 중장기 전략까지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통일부를 배제하고 대북협상을 주도해 온 청와대나 국가정보원은 앞으로는 공식적 창구로서 통일부에 남북대화의 전권을 부여해야 한다. 물론 남북관계에서 비밀접촉이나 비공식 협상이 전개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고 가로막힌 장애물을 제거하는 통치행위 차원으로 한정해야 한다.
남북대화를 공식기구인 통일부가 이끌어 나갈 때만이 헌법·법률·제도 및 원칙에 입각하고 투명하게 남북관계를 전개해 나갈 수 있다. 한편으로 통일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전 국민의 통일 의지를 결집하는 일이다. 통일문제는 민족의 장래와 관련된 일이므로 전 국민의 관심과 지지하에 추진되어야 한다. 북한 주민의 의사도 마찬가지이다. 분단 반세기가 넘게 이질화된 남북관계의 현실을 감안할 때 제도적 통일에 앞서 매우 지난하고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특히 2030세대는 통일에 대한 관심이 적고 통일 미래에 대해 매우 현실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남북의 주민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통일은 결코 이뤄질 수 없다. 남북대화와 교류만이 통일부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의 통일 염원을 모으고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며 미래 세대에 통일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새 정부는 통일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부처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힘을 실어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