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는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을 두고 기업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개정안은 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로 일원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8개 경제단체는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경제단체와 학계 전문가들은 수익성·안전성을 원칙으로 기금운용을 해야 하는 국민연금의 본질적 역할과 수책위의 책임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발제자로 나선 조현덕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국민연금법 제102조에 따라 수익의 극대화, 재원 확보, 재무건전성 등 안정적 운용을 통해 미래 세대에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라며 “2055년이면 950조 규모의 국민연금 고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연금은 장기투자자로서 수익성과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해야지 막대한 자금을 정치ㆍ사회적 수단으로는 활용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조 변호사는 “복지부가 개정 추진 이유로 대표소송 승소 시 기업 신뢰도와 가치 제고, 장기적 주주가치 상승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게 얼마나 주가에 영향을 끼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토론에서 좌장을 맡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조 변호사의 발언에 동의를 표하면서 “사기업 경영 활동에 과도한 지배력과 간섭은 헌법 126조를 위반하는 것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표소송을 결정하는 수책위 구성원들의 전문성과 대표성, 책임 여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책위원들은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등의 추천 인사로 구성된다.
곽관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수책위원은 금융·투자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장기적 수익성을 고려해 대표소송을 판단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도 “현재 수책위 2기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과연 수책위 전문위원이 투자 전문가인지는 의문”이라며 “책임 없는 수책위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대표소송으로 패소할 경우 오히려 국민연금에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만약 국민연금이 대표소송 제기 후 패소했을 때 누가 책임을 질지 의문”이라며 “책임 없는 권한을 가진 수책위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우려도 있어 수책위 책임에 대한 규정 신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현재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하고 개정 추진의 필요성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연금은 대표소송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투자자 이익에 부합할지, 이를 판단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하는지 등의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며 “또 기업의 우려와 학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종합적으로 살핀 뒤 개정안을 강행할지, 좀 더 보완해야 할지 등의 재검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대표소송 추진과 관련해 지난해 말부터 복지부는 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수책위로 일원화하는 내용의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현재 기금운용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추가 논의 중이다.
국민연금 대표소송 추진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24일과 올해 2월 25일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었다. 복지부는 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수책위로 일원화하는 내용의 ‘수탁자책임 활동 지침’ 개정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현재 기금운용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추가 논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