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횡령에 흔들리는 자본시장

입력 2022-05-0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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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2부 차장

올해 들어 굵직한 횡령 사건이 잇따라 터져 나오며 자본시장의 신뢰성을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다.

새해 첫 거래일인 1월 3일 터져 나온 오스템임플란트의 횡령 사건이 던져준 충격부터 상당했다. 자금관리 팀장이 벌인 횡령 금액은 최초 1880억 원에서 조사 결과 2215억 원으로 불어났다. 작년 말 회사의 자본총계를 웃도는 규모다. 수사 과정에서 절반가량을 회수키는 했으나 회사는 결국 958억 원의 손실이 발생, 손실충당금으로 계상해야 했다. 상장폐지 위기를 넘어 주식 거래가 재개된 지난달 28일에는 기준가 대비로는 7.44%지만 거래정지 직전보다는 21.5% 급락해 4300억 원가량의 시가총액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2월에는 유가증권 상장사인 계양전기에서 245억 원 규모의 횡령이 발생했다. 이 역시 재무 관련 직원 소행으로 밝혀졌다. 최근에는 우리은행 직원이 614억 원을 횡령하는 일이 터졌다. 일개 기업이 아닌 시중은행, 그것도 4대 은행 중 한 곳에서 장기간 발생한 범죄라는 사실에 충격을 더하고 있다.

비단 이것이 전부일까. EY한영이 국내 기업의 회계, 재무, 감사 등 업무에 종사하는 임직원 59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명 중 1명은 회사 내에서 임직원에 의한 횡령이나 기타 회계 부정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한다. 횡령 규모가 크지 않거나 익히 유명하지 않은 기업들의 횡령은 자본시장에서 비일비재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횡령ㆍ배임혐의발생’을 공시한 기업은 41곳이다. 올해 들어 관련 공시를 낸 기업도 8곳으로 20%가량 차지한다. 이 공시를 회사가 냈다는 것은 횡령이나 배임으로 의심되는 사실을 확인해 경찰 혹은 검찰에 고소장을 냈거나 공소 제기된 것을 확인했다는 의미다.

특히 공시를 낸 기업 중 절반가량인 20개 기업이 코스닥 상장사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통상 유가증권 상장사들보다 기업 규모가 크지 않고 인력도 충분치 않아 내부통제, 내부회계 관리 시스템 수준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천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오스템임플란트조차도 내부회계 관리제도와 관련해 자금일보 승인과 법인인감 보안, 공인인증서 및 OTP 관리에 대해 “충분하고 적절한 통제 절차 미운영”이라는 중대한 취약점을 안고 있었다.

시스템의 부재는 내부회계 관리제도 부적정 감사(검토)의견의 주요 사유와도 이어진다. 삼성KPMG에 따르면 내부회계관리제도 부적정 감사(검토)의견 중 ‘자금통제 미비’로 인한 비율은 2019년 14.4%, 2020년 12.4%로 집계됐다. 2020년 미국에서 불과 1건(0.3%) 발생한 것과 비교할 때 매우 높은 비중이다. 여기에 ‘회계 인력 및 전문성 부족’도 주요 사유로 지목됐다. 자금 횡령이나 유용 등을 막을 기업의 내부 장치가 부족하다는 평가와 일맥상통한다.

오랜 기간 지속해온 횡령 문제는 기업에 국한하지 않는 사회 전반의 문제다. 자금 담당 등 일부 직원의 소명의식, 도덕성에 기대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횡령ㆍ배임혐의발생의 피고소인 상당수는 전ㆍ현직 대표와 같은 임원이 차지했다.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면 법과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하는 수밖에 없다. 관련 입법을 다루고 관리 감독해야 하는 정치권, 금융당국의 책임이 가볍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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