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는 출범 이후 국정과제, 경제정책 방향, 세법 개정안, 2023년 예산안 등을 통해 시장우선주의·시장중심주의를 내세우면서 민간 주도 성장을 통한 경제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친시장주의 정책과 매우 유사하다. 이명박 정부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해 정부의 역할을 시장으로 전환하였다. 하지만 그 결과 경기부양, 서민경제, 일자리 등 셋 다 크게 나아진 것은 없었다. 윤 정부의 이번 예산안은 민간역량 강화를 통한 시장주의, 서민·사회적 약자 지원을 강조한다.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에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을 일부 믹스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예산안에서 두드러진 점은 긴축재정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국민경제가 악화하고 있는 상황이라 재정의 역할이 커져야 하는 시기에 그 역할을 축소한다는 것이다. 실제 2023년 총지출(본예산 기준)은 전년 대비 5.2% 증가해 639조 원이다. 2021년 총지출 증가율 8.5%, 2022년 8.3%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 총수입(결산·최종 예산 기준) 증가율도 2021년 19.2%, 2022년 6.8%에 비해 크게 줄어든 2.8%에 그쳤다. 총수입 증가율이 적기 때문에 총지출 증가율을 줄여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언뜻 보면 타당한 말이지만 재정의 본래 기능은 자원배분의 효율성, 소득분배의 형평성, 경제의 안정적 운영 등이다. 재정건전성 유지는 재정의 기능을 다하는 데 운용되는 수단과 방법이지 목표가 아니다. 경제 상황에 맞게 재정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고, 이 기능들 중 무엇을 우선할지를 선택하는 것이 정치의 영역이다. 이번 예산안에서 총수입 증가율이 줄어든 주요 이유는 대기업 법인세, 자산가 종부세, 고소득자 소득세 등 6조4000억 원을 감세하기 때문이다. 반면 주로 지출이 감액된 부처는 서민경제와 맞닿아 있는 국토부의 취약계층 임대주택 관련 사업, 중기부의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 관련 지원 사업들이다. 쉽게 말해 대기업·자산가·고소득자 감세로 인해 줄어든 세입에 대응해 서민경제를 위한 세출을 줄이는 것을 재정건전성 유지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로 감싼 셈이다. 재정의 기능에서 소득분배를 등한시하고 시장주의를 선택한 정치적 결정이다.
코로나 시대, 고금리 시대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발생 때보다 이후가 경제 상황이 더욱 나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물가는 치솟고 금리가 인상되면서 가계부채 부담에 국민경제는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내년 초까지 물가상승률이 5~6%대를 오르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예산 총지출 증가율 5.2%는 물가상승률과 비슷한 규모이다. 총지출 증가 규모가 물가상승률과 비슷하다는 것은 국가의 국민 경제를 위한 실질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치는 무엇인가? 다시 물어보고 싶다. 앞서 말한 대로 경제 상황의 필요에 맞게 적극적으로 국민경제를 살리는 것이 좋은 정치이다. 국민들이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적극적인 예산 집행인 ‘확장재정’에서 돈을 풀지 않는 ‘건전재정’으로 바꾸었다고 박수 쳐 줄 수는 없다. 기획재정부는 건전재정을 내세우며 재정준칙, 국가부채, 통합재정수지 악화 등을 논리를 펼 수 있다. 그들은 행정을 하는 관료들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영역은 행정과 다르다. 정치가 행정의 논리에 막힌다면 정치는 더 이상 권위를 내세울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정치가 재정은 확대하면서, 국채는 줄이고, 조세 부담을 최소화하는 ‘재정의 트릴레마’를 한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가치를 조금 희생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이다. 예산의 권위적 배분 과정은 일부 정치인들이, 일부 관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투명하게 국민적 동의, 정치적 합의 등 이해와 설득의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