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 아르헨 꺾고 중동 자존심 세운 사우디...빈 살만 왕세자 파워 통했나

입력 2022-11-23 15:19 수정 2022-11-2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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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살만 왕세자와 가족들이 22일(현지시간) 사우디와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보고 있다. 이날 빈 살만 왕세자는 경기 중 이슬람식 기도를 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출처=빈 살만 인스타그램)
▲빈 살만 왕세자와 가족들이 22일(현지시간) 사우디와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보고 있다. 이날 빈 살만 왕세자는 경기 중 이슬람식 기도를 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출처=빈 살만 인스타그램)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르헨티나 경기에서 시선을 압도한 건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가 아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였다. 얼마 전 방한해 대규모 투자보따리를 선물한 빈 살만 왕세자는 자국이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경기를 펼칠 때 이색 응원을 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비단 월드컵뿐 아니라 일거수일투족이 세계의 조명을 받는 빈 살만 왕세자는 국제무대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무릎 기도’ 응원 시선 압도

카타르 월드컵 최약체 중 한 팀으로 꼽혔던 사우디아라비아가 22일(현지시각)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강호 아르헨티나를 꺾는 기적을 썼다. 카타르 도하를 찾은 사우디 축구 팬들은 새벽까지 국기를 몸에 두른 채 길거리를 뛰어다니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 통계 전문회사 닐슨 그레이스노트가 사우디의 승리 확률을 8.7%로 예상할 정도로 아르헨티나의 압승이 예상된 경기에서 월드컵 역사상 손에 꼽는 이변이 연출됐다.

이번 승리와 함께 주목받은 것은 빈 살만 왕세자였다.

빈 살만 왕세자는 축구 경기가 펼쳐지는 중에도 무릎과 이마를 바닥에 댄 기도를 선보이며, 축구 팬들의 관심을 불러모았다. 기독교나 불교 등에 익숙한 서구·아시아권 문화에서 이슬람의 응원은 생경하게 다가왔다.

빈 살만이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사진에서 그와 가족들은 소파에 앉지도 못하고,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응원했다. 일부는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보고 있고, 일부는 몸을 돌려 신을 향해 기도하기도 했다. 슛이 골로 연결될 때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빈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 국기를 들고 있는 친형 압둘라지즈 사우디 에너지 장관 어깨에 손을 올리며 환하게 웃기도 했다.

사우디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다음 날을 공휴일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빈 살만 인스타그램)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빈 살만 인스타그램)

축구 사랑이 만든 외교

사실 사우디아라비아와 월드컵 개최국 카타르는 수년간 껄끄럽게 지내왔다.

2017년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이집트 등은 카타르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지원하고 이들의 숙적인 이란과 해상 가스전을 공유하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했다.

이후 4년 뒤인 지난해 1월 이들 국가는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담에서 카타르와의 국교를 정상화했다. 쿠웨이트와 미국이 카타르 단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 노력을 기울였는데, ‘공동의 적’으로 지목된 이란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고자 협력을 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먹서먹하게 지내던 두 나라는 이번 월드컵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빈 살만 왕세자가 카타르에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월드컵을 축하하기 위해 카타르에 직접 방문할 만큼 악연을 해소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에너지부, 내무부, 외교부, 상무부 장관 등을 포함한 사절단과 함께 카타르 도하를 방문했다.

모든 정부 부처와 기관에 카타르가 요구하는 추가 지원이나 시설을 제공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 살만 왕세자가 월드컵을 계기로 카타르와의 외교를 돈독히 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22일(현지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아라비아 경기.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후반 1-2로 패색이 짙어지자 머리를 움켜쥐고 있다.(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아라비아 경기.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후반 1-2로 패색이 짙어지자 머리를 움켜쥐고 있다.(연합뉴스)

월드컵 넘어 세계적 리더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주 우리나라에서 ‘네옴 시티’와 관련해 재계 총수들과 투자를 논의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게다가 그가 주도하는 사우디 국부편드(PIF)는 우리나라에서 콘텐츠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들어 엔씨소프트 지분 총 9.26%를 확보하며 2대 주주에 올랐고, 일본 증시에 상장된 넥슨 주식 7.09%를 매입해 4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사우디 정부는 CJ ENM과는 문화협력 협약을 맺었고, SM엔터테인먼트와는 메타버스 사업 협력도 진행 중이다.

그는 현재 글로벌 리더 중 가장 바쁜 남자로 통한다.

특히 월드컵 개막식에서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의 옆자리에 초청될 정도로 국제적으로 중요한 인사로 자리 잡았다. 세계적인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에서 사실상 국제적인 최고 지도자처럼 보이는 효과를 냈다.

두 사람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 개막식에서도 나란히 앉았고, 올해 8월엔 한 복싱 경기장에서 함께 사진을 찍어 친분을 과시했다.

2조 달러(약 2688조 원)의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유한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해만 해도 국제무대에서 큰 활약이 없었다. 그러나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에너지난,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 지구촌 악재가 동시에 불거지자 입지가 변하기 시작했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원유공급 확대, 물가상승 억제 등에 열쇠를 지닌 거대 산유국으로서 사우디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서방국들의 국제적 따돌림이 흐지부지되며, 무함마드 왕세자의 국제무대 활동은 왕성해졌다. 그는 이달 이집트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존재감을 확대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올여름 바이든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을 만났고, 다음 달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 회담도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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