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미국이 대중국 견제 강도를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자국의 조치에 우방국들이 참여하도록 끊임없이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중국 정찰기구에 대한 정보를 수십 개국과 공유했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의 정찰 계획의 표적이 미국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며 동맹국과 연대하여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경제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다. 작년 10월 7일 미국 상무부 산하 산업안보국(BIS)은 대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강화된 제재 내용을 발표했다. 이 조치는 크게 세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특정 성능의 반도체와 이러한 칩을 포함하는 슈퍼컴퓨터를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수출통제 △둘째, 중국의 반도체 개발을 지원하는 미국인의 활동과 특정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장비를 대상으로 새로운 통제 △셋째, 이러한 조치가 공급망에 미치는 단기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수립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 조치로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는 기업들이 당장 생산에 차질을 빚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 결과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는 외국 기업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에만 1년간 문제없이 미국산 장비 및 미국인 기술자를 활용할 수 있는 유예조치를 부여했다. 바꿔 말하면, 우리 기업이 중국 내에서 반도체 공장을 지속해서 운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미국의 유예조치 연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그러나 필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미국의 유예조치가 사전에 치밀한 계산을 통해 내려진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유예조치가 다분히 임기응변적으로 취해진 조치였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종료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유예조치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아직까지 명확한 답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필자는 그 단서를 2023년도 국방수권법(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for Fiscal Year 2023)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최소 3년은 중국 내 외국 반도체 팹(Fab)에 유예를 부과할 것으로 보이며 5년 후부터는 유예조치가 종료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이러한 전망의 근거는 미국의 2023년도 국방수권법 5949조에 있다. 이 조항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기업의 미국 정부조달 시장 참여를 금지하는 것과 중국 반도체 기업의 반도체를 부품으로 사용하는 해외기업의 제품도 정부조달 시장에 참여를 막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조항의 실시를 위한 타임테이블에서 우리 기업에 주어진 BIS 10월 7일 규정의 유예조치 종료 시점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5949조는 우선 올해 6월 말까지 국가안보에 중요한 반도체에 관한 분석을 포함하여 연방정부의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동맹국 또는 파트너 국가 및 미국 내 반도체 설계 및 생산 능력에 대한 분석을 수행하도록 했다. 동시에 위험평가를 통해 미국 내 반도체 설계 및 생산능력 향상과 우방국과의 계약을 통해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할 수 있는 전략을 작성하도록 했다.
다음 단계는 위에 작성된 분석·평가·전략을 바탕으로 2년 내에 반도체 공급망 추적 및 다변화 이니셔티브(Traceability and Diversification Initiative)를 수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3년 내에 중국 반도체 기업의 미국 정부조달 시장 참여 금지를 위한 구체적인 규정 작성을 끝내고, 5년 후 해당 조치의 실시에 들어가도록 작성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올해 6월 말까지 반도체 공급에 대해 미국이 어떠한 분석을 하는지, 2년 내 미국이 어떠한 다변화 전략을 구축하는지, 그리고 3년 내 어떠한 구체적 규정을 작성하는지에 따라 우리 기업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 지속 가능 여부를 결정지을 미국의 유예조치 연장이 연계되어 결정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따라서 우리 정부와 기업은 긴밀한 협조를 통해 우리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이 세 차례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