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0개월 만에 4%대로 둔화했지만, 가공식품 물가는 10% 넘게 올라 14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다만, 정부가 최근 업계를 상대로 실태조사를 벌이는 등 전방위로 압박을 이어나가면서 기업의 추가 인상 계획에 제동이 걸리는 모습이다.
11일 통계청 KOSIS(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2월 가공식품 물가지수는 116.96(2020=100)으로 1년 전보다 10.4% 상승했다. 올해 1월(10.3%)보다도 상승률이 높아졌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월(11.1%)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앞서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2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8% 상승했다. 이는 전월 상승률(5.2%)보다 0.4%포인트(p) 축소된 것으로, 작년 4월(4.8%) 이후 10개월 만에 4%대로 둔화했다. 석유류와 축산물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고, 외식비 등의 상승 폭이 소폭 둔화한 영향이다.
반면, 가공식품 물가는 작년 1월(4.2%)에 4%대를 돌파한 이후 지난해 12월(10.3%)부터는 10%대를 넘어서는 등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품목별로 보면, 지난달 가공식품 총 73개 품목 중 이유식(0.0%), 유산균(-1.8%), 과실주(-8.6%) 등을 제외한 70개 품목의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가공식품 품목 중에서는 우유가 사용되는 치즈 가격이 1년 전보다 34.9% 오르며 가장 큰 상승 폭을 보였다. 지난해 원유(原乳) 가격이 인상된 여파다. 이에 따라 우유를 재료로 하는 빵,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도 연쇄적으로 올랐다. 빵 가격은 1년 전보다 17.7% 상승했고, 아이스크림도 13.6% 올랐다.
식용유 가격도 1년 전보다 28.9%로 큰폭 상승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여파로 지난해 식용유의 원재료인 대두, 대두유, 옥수수 등의 수입 물가가 올라 업계에서 가격을 인상해서다. 밀가루 가격도 공급이 불안해짐에 따라 22.3% 상승했고, 부침가루(26.3%)와 국수(19.6%), 라면(12.6%) 등도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른 최근 업계 인상분이 반영돼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여기에 지난해 맥주와 소주 등 술값이 줄줄이 인상되면서 주류 가격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주류 가격은 1년 전보다 5.3% 상승한 가운데, 양주는 12.5% 올라 주류 중 가장 많이 상승했다. 소주 가격도 8.6% 상승했고, 맥주도 5.9% 올랐다.
맥주의 경우, 보리·알루미늄 등 맥주 원재료와 부자재 가격 등이 오른 것이 출고가 인상에 영향을 미쳤고, 작년 4월부터 맥주에 붙는 세금이 전년보다 리터(ℓ)당 20.8원 올라 855.2원이 된 것도 맥줏값 인상 요인이 됐다. 소주 또한 주정 가격 등 원·부자재 가격 상승이 출고가 인상을 부추겼다.
이처럼 가공식품 물가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는 식품업계를 상대로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섰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주요 먹거리 가격안정을 위해 정부도 식품 원재료 관세 인하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만큼 관련 업계도 생산성 향상 등 원가 절감을 통해 인상 요인을 최대한 흡수해달라"고 당부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지난달 28일 식품업체 대표들과 만나 "올해 상반기에는 식품업계가 가격 인상을 자제하는 등 최대한 물가안정을 위해 협조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정부의 '물가 누르기'에 식품업계는 인상 계획을 연이어 철회하고 있다. 본래 이달부터 생수 출고가를 5% 올릴 예정이었던 풀무원샘물은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편의점 판매용 고추장과 조미료 제품 등의 출고가를 인상할 예정이었던 CJ제일제당 또한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지난달에는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주류업계의 소주 가격 인상 움직임과 관련해 실태조사에 착수하자,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롯데칠성음료 등 주류업계가 일제히 가격을 동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