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의무 폐지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부동산 시장 내 혼란이 커지고 있다. 실거주 의무 폐지는 국회 법안 통과가 필요하지만, 여야는 전세사기 관련법 처리 문제로 당장 이번 주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은 논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실거주 의무가 적용되는 가구는 현재 4만2000가구 이상 쌓였고, 청약과 전매가 계속되면 그 규모는 더 늘어나는 만큼 빠른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여야는 실거주 의무 폐지를 위한 국토법안심사소위 일정 조율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일각에선 10일 소위를 개최해 재논의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하루 전인 이날까지 아무런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논의 지연의 가장 큰 원인은 전세사기 대책 법안 때문이다. 전세사기 대책 수립이 우선순위로 떠오르면서 실거주 의무 폐지는 뒤로 밀린 것이다.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실 관계자는 “10일이나 11일 소위를 열자는 얘기는 나왔지만, 지금까지 여야가 합의한 사항은 전혀 없어서 해당 날짜에 논의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으로선 정해진 게 하나도 없다”며 “무엇보다 전세사기 대책법 논의가 우선이고,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 검토는 다음 순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안 논의 지연도 문제지만, 야당이 실거주 의무 폐지에 반대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데 다수당인 민주당 동의 없이는 법안 통과가 어려워 (당정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거주 의무 폐지는 전매제한 완화와 함께 시행돼야 할 ‘패키지’ 법안 성격이 짙다. 만약 실거주 의무가 남아있으면 분양권을 매매한 뒤에도, 해당 주택에 거주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를 위반하면 현행법상으로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등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당정은 법안 미통과 시 발생할 시장 내 대규모 혼란을 우려하고 있지만, 법안 통과의 열쇠는 민주당으로 넘어간 만큼 현재로썬 이를 해결할 묘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26일 열린 법안소위 회의록을 살펴보면 이원재 국토교통부 1차관은 실거주 의무 폐지 효과가 적용되는 가구의 규모를 묻는 말에 “지금까지 공급된 주택 중 혜택을 보는 규모는 약 4만2000가구”라고 답했다. 바꿔말하면 법안 통과가 불발되면 4만 가구 이상이 범법자가 될 처지에 놓인 상황인 셈이다.
이에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전매제한을 풀고 난 뒤 실거주 의무를 풀지 않으면 범법자들이 대거 발생할 것이고 대부분 피해는 서민이 볼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시장에선 전매제한 완화와 실거주 의무 폐지 기대감으로 최근 분양·입주권 거래는 지난해 대비 폭증했다.
이날 서울부동산정보광장과 경기부동산포털 등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분양·입주권 거래량은 47건으로 지난해 12월 17건의 두 배 이상을 기록 중이다. 경기지역 역시 지난달 693건의 분양권 거래가 이뤄져 지난해 12월 241건을 훌쩍 넘는 거래량을 보인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시장 연착륙을 위해 여러 가지 규제 완화책을 내놨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실거주 의무 폐지”라며 “지금 부동산 시장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데 실거주 의무 폐지가 지연되면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실수요자 혼란도 가중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법 통과 말곤) 대안이 없는 상황인 만큼 여당과 정부가 야당과 협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