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에세이]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무조건 반대보단…

입력 2023-05-2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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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매직케어협동조합 등 관계자들이 지난해 6월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제11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기념해 가사법 안착과 활성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라이프매직케어협동조합 등 관계자들이 지난해 6월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제11회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기념해 가사법 안착과 활성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지난해 8월 아내가 출산한 뒤 3주간 정부 지원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했다. 운이 좋게도 아기를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는 분을 만났다. 아내는 마음 편하게 산후조리에 집중했다. 지원 기간이 끝난 뒤에도 산후도우미를 계속 고용하고 싶을 정도였다.

문제는 돈이었다. 가사도우미의 시장임금(월급)은 내국인이 300만 원 이상, 중국동포도 250만 원 내외다. 가계수지가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상황에 가사도우미 고용은 욕심이었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포(H-2) 외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추진한다고 한다. 비전문취업(E-9) 허용업종에 ‘가사근로자’를 추가하는 방안이다. H-9 비자 취업자는 주로 동남아시아 등 저개발국가 출신이다.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가사근로자를 공급해 저출산 문제에 대응한단 것이다. 서울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정부가 인증한 민간가사서비스업체가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사용자 가정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입주가 아닌 출퇴근 형태로 운영하며, 주거비도 일부 지원한다.

하지만, ‘저렴한’ 가사근로자 공급이 가능할까. 올해 최저임금은 주 근로시간 40시간(일 8시간) 기준 월급으로 환산했을 때 201만580원이다. 최저임금법은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여기에 사회보험료와 기타 직·간접 노무비가 추가로 든다. 일부에서 거론되는 ‘100만 원 가사도우미’ 도입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한국은 외국인에 대한 고용·직업상 차별을 금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111호 협약 비준국이다. 특히 외국인에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허용하면 저숙련 직종을 중심으로 외국인 취업자가 내국인을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 가사도우미에만 예외를 두는 것도 어렵다. 장기적으로 타 업종과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결국,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은 공급량을 늘리는 정책이지 이용 비용을 낮추는 정책이 아니다. 이 경우 정책 수혜자는 가계흑자(잉여소득)가 가사근로자 임금보다 많은 소수에 한정된다.

특히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이 필요하다’는 말을 나쁜 방향으로 해석하면 ‘외국인 가사근로자라도 고용해야 할 만큼 육아·가사가 힘들다’는 말이 된다. 가뜩이나 결혼·출산·육아·가사에 대한 청년들의 거부감이 큰데, 정부가 이런 거부감을 더 키우는 꼴이다. 정책이란 게 이렇다. 선의로 추진한 게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부가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의 참고 사례로 제시한 싱가포르는 지난해 역대 최저 출산율(1.05명)을 기록했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참고 사례로 내놓은 홍콩은 우리와 출산율 꼴찌를 다투는 곳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정부도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다만,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상황은 긍정적이다. 어쨌든 저출산 극복이 사회적으로 의제가 됐다. 논쟁이 확산할수록 아이디어도 다양해진다.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필요성을 따지고 영향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돌봄체계와 돌봄인력 양성체계, 노동시장, 양성평등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책대안이 쏟아질 것이다. 그 결과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이 무산되더라도 다른 획기적인 정책대안이 나온다면 정부로서도 좋은 일일 거다.

중요한 건판이 깔렸다는 사실이다. 무조건 반대하기보단, 이참에 치열하게 토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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