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후] 한국 사회에 ‘상상’을 허하라

입력 2023-07-12 07:00 수정 2023-07-1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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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계가 ‘한국앓이’를 하고 있다. 동남아와 중동은 ‘롤모델’로 한국을 꼽고, 미국 Z세대는 ‘코리안 드림’을 꿈꾼다. CNN은 세계 최대 언어학습 애플리케이션에서 한국어가 세계 2위 사용 언어인 중국어를 제쳤다며 K-컬처에 이은 한국어 열풍을 예고했고,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한국이 2040년 세계를 이끄는 4개국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호평했다.

단군 이래 처음 받아보는 ‘스포트라이트’이지만,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인구연구소는 “한국이 특별한 결단을 하지 않으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까지 곤두박질친 데 대한 경고다. 그뿐인가. 중국이 ‘중국몽’을 노골화하면서 한국은 또다시 운명을 시험받고 있다. 미중 패권 갈등 속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한국의 생존 방식을 뿌리째 뒤흔든다.

자유무역이 쇠퇴하고 지정학이 부활한 시대, 기술과 자원이 국가의 ‘몸값’을 결정한다. 자원이 척박한 한국이 신냉전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는 길은 기술력뿐이다. 과학에 국가의 운명을 걸었던 건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사막의 조그만 땅덩어리, 그것도 사방이 적에 둘러싸여 있던 이스라엘은 과학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이스라엘 혁신의 주역인 시몬 페레스 전 대통령은 “과학은 탱크로 정복할 수 없고, 전투기로 보호받을 수 없다. 과학은 한계가 없다. 그리고 그 위대한 업적은 국가의 모든 부를 끌어올린다”고 예찬했다.

페레스는 ‘혁신’을 믿었다. 우회할 길이 없는, 절박함이기도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페레스는 그 힘을 모순에서 찾았다. “우리 자신 속에 숨겨진 보물들이 땅에서 찾을 수 있는 어떤 것보다 훨씬 더 값지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천연자원이 없었기에 사람의 창조성에 의지하고, 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과정이 순탄했을 리 없다. 당시 이스라엘은 정부가 경제를 주도하는 사회주의 체제였으니 시장과 자유, 경쟁을 DNA로 하는 혁신에 대한 저항이 오죽했으랴. 그런 악조건에서 혁신을 가능하게 만든 능력은 다름 아닌 ‘상상’이었다. 페레스는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 아니라 상상”이라며 “기억은 이미 걸어온 길을 되돌아 가보는 것이지만 상상은 아직 안 가본 길을 미리 가보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그러면서도 한계를 두지 않는 생각을 훈련한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현실주의자가 되려면 기적을 믿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현실에 맞서기 위해 가장 '이상적'이 돼야 하는, 최고로 역설적 삶인 셈이다.

상상할 줄 아는 힘은 자전거도 못 만들어 비웃음을 사던 국가를 첨단기술 산업의 메카, 21세기 최고의 창업국가로 탈바꿈시켰다. 글로벌 창업생태계 평가기관 스타트업지놈이 발표한 ‘2023 글로벌 창업생태계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텔아비브는 실리콘밸리와 뉴욕, 런던, 로스엔젤레스에 이어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인구 900만의 작은 나라가 초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기술로 ‘값어치’를 증명해야 하는 한국도 혁신이 절실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성장 대 균형, 자본 대 노동, 개발 대 보존의 이분법적 사고방식부터 걷어내야 한다. 성장이 불균형을 초래하고, 자본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개발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케케묵은 논리가 철 지난 규제를 연명시키고 한국 사회의 ‘상상’을 가로막고 있다.

김서영 사회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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