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계층 재무건전성 가장 나빠
소득별 타깃설정한 맞춤 대책을
주요국과 달리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금융위기와 코로나19 등 위기 상황에도 꾸준히 증가하였다. 실물자산의 가치 상승에 힘입어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이 증가한 가운데 소득 계층 간 ‘부(富)의 양극화’ 현상도 뚜렷하게 진행하였다.
2023년 1분기를 기점으로 가계부채가 1800조 원을 넘어서고, GDP(국내총생산) 대비 비율도 100%를 돌파하면서 한동안 주춤했던 가계부채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부채가 소득이나 자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가계의 재무 건전성이 꾸준히 악화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가 커지면서 정부는 금리상승, 총량규제 등 거시경제적 대책을 내놓는 한편 상대적으로 취약한 저소득 계층의 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문제는 요즈음 가계부채 문제가 저소득층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사회의 기둥인 중산층이 대부분인 중간 계층에 쏠려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통계청 등의 가계금융복지조사가 내용 측면에서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갖춘 2013년부터 최근까지 소득 5분위별 가계 재무의 건전성을 살펴봄으로써 판단해 볼 수 있다.
먼저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을 보자. 총자산 대비 부채 비율의 경우 2022년 기준 3, 4분위가 각기 17.5%, 18.3% 등으로 가장 높고,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가 10.0%로 제일 낮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의 변화를 보면 1, 2분위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금융 저축액 대비 순수 금융부채 비율의 경우 2022년 기준 1분위가 가장 낮고, 3, 4분위가 두 배 가까이 높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분위는 10%포인트(p) 이상 줄어든 반면 3, 4분위는 25%p 이상 큰 폭으로 늘었다.
다음으로 소득 대비 부채 관련 지표를 보자.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의 경우 2022년 기준 1분위가 가장 낮고, 3분위와 4분위가 가장 높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5분위와 1분위의 증가 폭이 가장 작고, 3분위와 4분위는 무려 40%p 이상 증가하였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은 2022년 기준 5분위와 1분위가 가장 낮고, 2~4 중간 분위가 높다. 2013년부터의 변화도 5분위의 증가 폭이 가장 작고, 2분위가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종합하면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저소득층인 1분위가 매우 낮고, 중간 계층인 3, 4분위가 가장 높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 비율도 3, 4분위가 가장 높고, 원리금 상환 능력은 2분위가 가장 떨어진다.
결론적으로 최저소득 1분위의 경우 가계부채 문제가 가장 낮고, 중간 소득 계층 가계의 재무 건전성이 가장 나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자산 증식이나 소득 창출 환경이 열악한 가운데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의 금융 소외 때문에 부채 증가가 생각보다 크지 않음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가계부채 정책은 소득 계층별로 세심하게 펼칠 필요가 있다. 모든 계층에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거시경제적 처방은 자칫 이미 커져 버린 가계부채를 갑자기 파열하게 할 수도 있다. 현재로선 가장 위험한 계층이 중간 소득 계층인 바, 핵심은 이들의 가계부채 문제를 연착륙시키는 것이다.
부동산 가치가 큰 폭으로 올라 담보 능력이 생기면서 아직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 않지만, 만일 부동산가격이 급락하거나 고금리 현상이 오래 지속되면 이들 가계의 건전성이 훨씬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
우리 경제의 기둥인 중산층이 무너지면 그 충격은 생각보다 매우 클 수 있다. 서둘러 실물자산 유동화 방안을 모색하여 이들이 금융 생활을 계속하면서 높은 부채 부담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반면 상대적으로 취약 계층인 1, 2분위의 경우 가계부채가 문제라기보다는 자산이나 소득 부족이 문제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금융 소외를 해소하고, 자산 형성이나 소득 증대를 유도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정부 보조 임대주택을 활성화해 저소득층이 저축할 수 있는 여력을 증대하고, 취약 서민들을 위한 이자 보조 저축을 확대하는 등 다양한 자산 형성 지원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