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갈등의 세계화, ‘시그널’에 주목을

입력 2023-10-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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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중심 질서, 패권경쟁으로 균열
기존 트렌드 안주해선 위기직면
변화조짐 읽고 흐름에 대비해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심상치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2년여 계속되는 상황에서 세계의 화약고라고 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전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이 기어이 세계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안으로는 60여조 원에 달하는 역대급 세수 펑크 전망에 여야는 전·현 정부 책임론으로 공방 중이다. 우리나라의 세수 감소도 따지고 보면 미·중 패권 갈등으로 인해 중국이 우리나라의 최대 무역 흑자국에서 최대 적자국으로 전환된 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무역만 어려워진 게 아니다.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는 러시아 편에 서서 러시아, 중국까지의 연대 대열을 형성해 국제 제재와 고립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이러한 북·중·러의 연대는 한·중·일과의 대립 갈등을 고조시킨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가는 한반도 또는 동아시아에서 무력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현재의 상황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돼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면서 균열이 생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균열이 봉합될지 미국과 중국의 양자 또는 다자질서로 재편될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형태로 재편되거나 안정화될 때까지는 10여 년 또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이에 무수히 많은 사건이 발생해 기본적 역학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어디로 전개될지 모르는 상호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기존의 고정관념, 트렌드를 중시하는 사고나 시각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상항을 민감하게 감지하기 위한 시그널에 주목해야 한다. 미약한 변화의 조짐 또는 충격적인 사건, 이벤트가 가진 의미를 유연하게 해석하고 조심스럽게 대응해야 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급속하게 발생해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변화를 몇 번 겪었다. 이러한 변화를 학자들은 와일드카드, 블랙스완, X-이벤트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전 세계에 2년 넘게 영향을 미친 코로나19 팬데믹이 있다. 아시아와 우리나라가 특히 심각하게 겪은 1997년 외환위기도 이와 같이 예측하기 어려우면서 급속하게 닥친 변화다. 그런데 이러한 예상치 못한 변화는 전혀 예고없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자그마한 전조 현상들이 있다. 코로나19 때도 그렇고 외환위기 때도 전조 현상이 있었다. 구조적인 균열이 생기는 상황에서 작은 이벤트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다가 우연히 이 균열에 불꽃을 튀기면 터지게 된다.

가변적이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제 트렌드를 아는 것만으로는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어렵다.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거나 기존 트렌드를 바꿀 수 있는 어떤 이벤트를 ‘시그널’이라고 한다. 트렌드가 기정사실화된 경향을 의미한다면, 시그널은 트렌드가 될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의미한다. 시그널을 무시하고 기존 트렌드에 안주하였다가는 개인은 물론, 가족, 기업, 조직, 국가가 변화된 상황에 대비하지 못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렇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그널에 대응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시그널을 성급하게 새로운 트렌드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가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미·중 관계의 변화라는 시그널을 중국과의 단절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단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상황은 민감하게 받아들이면서도 행동은 조심스럽게 하며 변화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끄는 끈기와 유연함이 필요하다. 몇 년간의 시그널에 대한 대응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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