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이재용 회장은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당부했다.
반도체 산업은 삼성의 주력 사업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체 수출을 책임지는 국가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패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경제·안보동맹의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도 한다.
미국은 지난해 첨단 반도체 또는 반도체 제조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전면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대중국 수출 차단을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중국 수출 규제 국면에서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에 이른바 '칩4 동맹'을 제안하는 등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을 주도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이 중요한 시점마다 반도체 사업을 직접 챙기는 것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술 격차를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한국이 '반도체 강대국'으로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병철 창업회장은 '사업으로 나라에 공헌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신념을 바탕으로 삼성을 이끌었다. 이재용 회장 또한 이러한 선대의 유지를 이어 받아,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데 근간이 되는 기술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고 있다.
반도체를 둘러싼 불확실성의 증가로 전례없는 위기가 지속되고 있지만, 이재용 회장은 '기술'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경영철학을 수차례 강조해왔다.
삼성은 올해 3분기까지 반도체 부문에서 적자가 지속되고 있지만, 이재용 회장은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오로지 기술'뿐이라는 신념으로,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선행 투자를 주도했다.
지난해 6월 유럽 출장 귀국길에서 이재용 회장은 "(우리가 할 일은)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같다"고 말하며 기술 경쟁력 확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올해 3월 삼성이 용인에 향후 20년간 300조 원을 투입해 첨단 시스템 반도체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초거대 투자 계획은 오너의 명확한 철학과 과감한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편, 이재용 회장은 이날 삼성전자 기흥ㆍ화성 캠퍼스에서 반도체 전략을 점검하고,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에서 열린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3주기 추모 음악회에 참석했다.
이재용 회장이 이건희 선대회장 추모 음악회 참석 직전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한 것은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일군 선대회장의 위대한 업적과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위기를 넘고자 했던 기업가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의 행보에 대해 "반도체 산업을 태동시킨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 유산은 물론, 문화ㆍ예술 인프라 육성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자 했던 의지를 계승해 나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