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를 통해 그동안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온 대기업 그룹들이 잇따라 구조조정의 '쓴 맛'을 보고 있다.
대형 M&A를 잇따라 성공시키면서 재계의 질시 대상이 됐던 대기업 그룹들은 지난해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인수 기업의 주가가 폭락하고 모기업마저 유동성 위기에 봉착하면서 구조조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M&A는 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외부 자금에 의존하거나 수익성 모델에 대한 치밀한 준비 없이 추진하면 그만큼 위험이 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밥캣 인수 이후 겪어온 유동성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두산 DST 등 3개사와 한국우주항공산업(KAI) 지분을 경영권은 보유하는 형태로 페이퍼컴퍼니(SPC)에 전량 매각키로 했다. 매각대금은 7800억원 규모다.
두산은 지난 2007년 밥캣 인수 이후 갑작스런 미국 경제위기로 채권단과 협의한 '에비타'(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 차감전 영업이익)비율 7배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게 사실이다. 이 비율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두산은 현금으로 부족분을 채워넣어야 하고, 계속되는 적자에 증자 필요성이 커져왔다.
이 때문에 연초부터 한국우주항공산업(KAI) 지분 매각을 비롯해 계열사 매각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에 앞서 지난해와 올해 초에는 테크팩(매각대금 4000억원)과 주류부문(5027억원) 매각을 단행한 바 있다.
따라서 채권단에 올해말까지 약속한 10억달러 중 잔여분 7억2000만 달러 유상증자목표가 무난히 달성될 전망이다.
두산 관계자는 "금융시장 일각의 자금불안 우려를 완전히 해소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대형M&A에 대한 후유증은 두산그룹 뿐만이 아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재계의 강자로 떠올랐지만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오는 7월까지 대우건설의 새로운 투자자를 찾겠다는 계획이지만, 남은 2개월 동안 투자자를 찾지 못하면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사모펀드에 대우건설을 다시 내놓아야 한다.
동부와 애경그룹도 사업 영역을 무리하게 확장했다가 탈이 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부그룹은 2002년 아남반도체를 인수하는 등 1조2000억원을 투자해 종합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반도체 경기 악화로 동부메탈을 산업은행 사모펀드에 매각해야 할 상황이다.
애경그룹은 항공산업 진출과 삼성플라자 분당점 인수, 평택 민자역사 신축 등으로 5000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으며 유진그룹도 2006년 이후 서울증권·하이마트 등을 차례로 인수하면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침체와 금융위기로 재무적 투자자를 끌어들여 M&A에 참여한 기업들이 잇따라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며 "결국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 등을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유동성 악화로 인해 채권단과 재무약정을 체결한 금호아시아나그룹 등은 앞으로 자구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까지는 반기마다 약정서에서 밝힌 차입금 상환계획을 점검했지만 그 점검주기가 3개월마다로 촘촘해졌기 때문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해당 기업의 재무구조를 수시로 살펴보는 한편 재무약정과 달리 진행되는 사항이 있으면 대출 중단, 여신 회수와 같은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